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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익상(韓益相)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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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한매권(韓邁權)
자(字)치문(致文)
호(號)백졸(百拙)
생년1767(영조 43)
졸년1846(헌종 12)
시대조선후기
본관청주(淸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한명간(韓命幹)
외조부신위(申緯)
저서『자오집』

[상세내용]

한익상(韓益相)
1767년(영조 43)∼1846년(헌종 1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초명은 매권(邁權). 자는 치문(致文), 호는 자오(自娛)백졸(百拙). 영의정 한상경(韓商敬)의 후손으로, 한명간(韓命幹)의 아들이며, 모친은 신위(申緯)의 딸이다.

1807년(순조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권지부정자(承文院權知副正字)전적을 거쳐, 경성부판관(鏡城府判官)무안현감장령정언 등을 지냈다. 이어 재차 경성부판관을 지내고 부호군우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836년(헌종 2) 전국에 기근이 심하고 탐관오리들이 횡행할 때 강원도관찰사로 임명되어 탐관을 적발하고 선정을 베풀었다. 이후 병조참판이 되었으며, 80세에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청백리(淸白吏)로 이름이 높았다.

저서로는 『자오집』이 있다.

[참고문헌]

憲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이원균(李源均)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