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순(金學淳)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D559C21CB1767X0 |
자(字) | 이습(而習) |
호(號) | 화서(華棲) |
생년 | 1767(영조 43) |
졸년 | 1845(헌종 11)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안동(安東[新])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이석(金履錫) |
외조부 | 홍주영(洪疇泳) |
저서 | 『화서집』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학순(金學淳)
1767년(영조 43)∼1845년(헌종 11).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안동(安東[新]). 자는 이습(而習), 호는 화서(華棲).
부친은 목사 김이석(金履錫)이며, 모친은 남양홍씨로 홍주영(洪疇泳)의 딸이다.
1798년(정조 22) 사마시에 합격하고, 1805년(순조 5) 증광시에 장원급제하였으며, 전시(殿試)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었다.
1808년 성균관전적‧병조좌랑을 거쳐, 1809년 홍문관교리에 임명되었다.
그뒤 영남어사‧순천부사 등을 역임하고, 1825년 공청도관찰사(公淸道觀察使), 1827년 도승지, 1832년 공조판서에 제수되었다.
40여년 동안 주요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왕의 자문과 정사에 깊이 관여하였고, 청렴과 근면으로 이름이 높았다.
저서로는 『화서집』이 있다.
부친은 목사 김이석(金履錫)이며, 모친은 남양홍씨로 홍주영(洪疇泳)의 딸이다.
1798년(정조 22) 사마시에 합격하고, 1805년(순조 5) 증광시에 장원급제하였으며, 전시(殿試)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었다.
1808년 성균관전적‧병조좌랑을 거쳐, 1809년 홍문관교리에 임명되었다.
그뒤 영남어사‧순천부사 등을 역임하고, 1825년 공청도관찰사(公淸道觀察使), 1827년 도승지, 1832년 공조판서에 제수되었다.
40여년 동안 주요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왕의 자문과 정사에 깊이 관여하였고, 청렴과 근면으로 이름이 높았다.
저서로는 『화서집』이 있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憲宗實錄
憲宗實錄
[집필자]
김상호(金相淏)
대표명 | 김학순(金學淳) |
성명 | 김학순(金學淳) |
성명 : "김학순(金學淳)"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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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