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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순(金羲淳)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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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태초(太初)
호(號)경원(景源)
시호(諡號)문간(文簡)
생년1757(영조 33)
졸년1821(순조 21)
시대조선후기
본관안동(安東[新])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이인(金履仁)
외조부이극현(李克顯)

[상세내용]

김희순(金羲淳)
1757년(영조 33)∼1821년(순조 2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新]). 자는 태초(太初), 호는 산목(山木)경원(景源).

부친은 군수 김이인(金履仁)이며, 모친은 참봉 이극현(李克顯)의 딸이다.

1783년(정조 7)에 생원이 되고, 1789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사직서직장에 제수되었다. 같은해 초계문신(抄啓文臣)에 발탁되고, 사서를 강론하였다.

1791년 부수찬‧삼사를 지냈으며, 이듬해 사간으로서 이가환(李家煥)의 부당함을 상소하다 삭직당하였으나, 곧 포천암행어사로 나가 민폐를 살폈다.

1793년 상소한 일이 말썽이 되어 파직되었다.

1796년 괴산군수서산군수를 지낸 뒤, 1799년 응교부응교세자보도 등의 임무수행중 영남지방에 기근이 들어 암행어사로 다녀왔다.

그뒤 전라도관찰사승지를 거쳐, 1800년 이조참의가 되었다. 순조가 즉위하자 실록당상(實錄堂上)에 제수되었으며, 시강원보덕이조참판을 거쳐 1803년 영남안찰사, 1806년 호조예조병조공조참판한성부서윤이조참판한성부판윤대사헌 겸 홍문관제학비변사유사당상 등을 두루 지냈다.

1809년 병조판서이조판서, 이듬해에 호남관찰사, 1812년 광주유수이조판서 겸 세자빈객으로 인재등용을 고르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평소에 사감을 가졌던 전참의 한시유(韓始裕)의 무고로 인하여 사직당하였다.

후에 정헌으로 승계한 뒤 종부시제조판의금부사 등을 거쳐, 1819년 경기도관찰사로 재임중 어머니의 3년상을 치른 뒤 죽었다. 어릴 때부터 문사에 능하였으며 경술(經術)에 조예가 깊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純祖實錄
國朝榜目
淵泉集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대표명김희순(金羲淳)
성명김희순(金羲淳)
산목(山木)

호 : "산목(山木)"에 대한 용례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