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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환(金應煥)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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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영수(永受)
호(號)담졸당(擔拙堂)
생년1742(영조 18)
졸년1789(정조 13)
시대조선후기
본관개성(開城)
활동분야미술 > 화가
김진경(金振景)

[상세내용]

김응환(金應煥)
1742년(영조 18)∼1789년(정조 13). 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영수(永受), 호는 복헌(復軒)담졸당(擔拙堂). 의원(醫員) 김진경(金振景)의 아들이다. 화원이었던 노태현(盧泰鉉)의 외손서(外孫婿)이고, 이명기(李命基)장한종(張漢宗)의 장인이며, 김득신(金得臣)김양신(金良臣)의 큰아버지이다.

후사가 없어 동생 김응리(金應履)의 아들 김석신(金碩臣)을 양자로 삼았다. 도화서(圖畵署)의 화원이었으며, 소촌찰방(召村察訪)상의원별제(尙衣院別提)를 지냈다.

1759년 영조정순후(英祖貞純后)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와 1762년 정조효의후(正祖孝懿后) 『가례도감의궤』의 제작에 참여하였고, 1787년 정조어진(正祖御眞) 익선관본(翼善冠本) 도사(圖寫)의 수종화사(隨從畵師)로 활약하였다.

1788년에는 정조의 명으로 김홍도(金弘道)와 함께 영동 9군과 금강산을 유력(遊歷)하면서 실경을 그려 바쳤다.

이때 강세황(姜世晃)도 함께 동행하였다. 김홍도의 스승으로 전해져 있으나 그와의 나이 차이가 세살밖에 되지 않아 믿기 어렵다. 노론계 안동김씨 가문의 서외손(庶外孫)으로 시서화에 조예가 깊었던 성대중(成大中)과 친밀히 교유했으며, 그로부터 「복헌기(復軒記)」를 지어 받기도 하였다.

그는 남종화법(南宗畵法)의 산수와 진경산수(眞景山水)에 모두 능했으며, 진경은 대부분 금강산을 그린 것이다. 이들 금강산 그림은 정선(鄭歚)의 진경산수화풍을 계승한 것으로, 특히 그가 30세 되던 해인 1772년 김홍도에게 그려준 「금강전도」에 그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16년 뒤인 1788년 왕명으로 그렸던 「금강산도」에서는 정선의 화풍을 토대로 하여 꽉 채운 구도라든가 갈필의 터치, 그리고 부드러운 먹의 농담(濃淡)변화와 담채(淡彩)의 효율적인 사용 등으로 독특한 화면을 이룩하였다.

그리고 남종산수에서는 화보와 심사정(沈師正)의 영향을 강하게 나타내면서, 미법산수(米法山水)계통의 발묵법(潑墨法)을 애용하여 짙고 흐린 대비효과와 미묘하게 변하는 먹빛의 변화를 살렸다. 그는 정선의 영향을 발판으로 성장했던 조선 후기 정선파의 대표적 화가 중의 한 사람으로 진경산수의 발전 및 남종산수의 전개에 기여한 바 크다.

대표작으로 개인 소장의 「금강산화첩」‧「금강전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강안청적도(江岸聽笛圖)」 등이 있다.

[참고문헌]

豹遺菴稿(姜世晃)
靑城集(成大中)
槿域書畵徵(吳世昌, 啓明俱樂部, 1928)
韓國繪畵大觀(劉復烈, 文敎院, 1968)
韓國繪畵史(安輝濬, 一志社, 1980)
韓國의 美 12―山水畵 下―(安輝濬監修, 中央日報 季刊美術, 1982)
朝鮮後期의 眞景山水畵硏究(李泰浩, 한국미술사논문집 Ⅰ, 1984)
復軒‧白華詩畵合璧帖考(崔淳雨, 考古美術 76, 1966. 11.)

[집필자]

홍선표(洪善杓)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