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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황(姜世晃)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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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광지(光之)
호(號)산향재(山響齋)
호(號)박암(樸菴)
호(號)견암(蠒菴)
호(號)의산자(宜山子)
호(號)노죽(露竹)
호(號)표암(豹菴)
호(號)표옹(豹翁)
호(號)해산정(海山亭)
호(號)무한경루(無限景樓)
호(號)홍엽상서(紅葉尙書)
시호(諡號)헌정(憲靖)
생년1713(숙종 39)
졸년1791(정조 15)
시대조선후기
본관진주(晉州)
활동분야문학 > 문인
강현(姜鋧)
조부강백년(姜柏年)
진주유씨(晉州柳氏)
나주나씨(羅州羅氏)
출생지서울
묘소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
저서『표옹자지(豹翁自誌)』
저서『표암유고』

[상세내용]

강세황(姜世晃)
1713년(숙종 39)∼1791년(정조 15).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문인서화가‧평론가.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광지(光之), 호는 첨재(忝齋)산향재(山響齋)박암(樸菴)의산자(宜山子)견암(蠒菴)노죽(露竹)표암(豹菴)표옹(豹翁)해산정(海山亭)무한경루(無限景樓)홍엽상서(紅葉尙書)로도 불린다.
1. 가계
서울에서 강현(姜鋧)의 3남6녀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생모는 광주이씨로 집안은 대대로 학문과 장수를 누렸으며, 할아버지 강백년(姜柏年), 아버지 강현에 이어 71세 때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감으로써 이른바 삼세기영지가(三世耆英之家)로 칭송받았다.

후손으로는 부인 진주유씨(晉州柳氏)소생인 강인(姜)강완(姜俒)강관(姜)강빈(姜儐)나주나씨(羅州羅氏)소생의 강신(姜信)이 있는데, 강신과 그의 아들 강이오(姜彛五), 강완의 손자 강진(姜溍)이 그림으로 이름이 있었다.
2. 관직 생활과 예술 활동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과 교육, 자형 임정(任珽)의 영향을 받았으며, 처남 유경종(柳慶種), 친구 허필(許佖)이수봉(李壽鳳)과 절친했고, 이익(李瀷)심사정(沈師正)강희언(姜熙彦) 등 여러 사람들과 교유하였다.

특히, 그에게서 그림을 배운 제자로서 김홍도(金弘道)신위(申緯)가 주목된다.

8세에 시를 짓고, 13, 14세에 쓴 글씨를 얻어다 병풍을 만든 사람이 있을 정도로 일찍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32세 때 가난으로 안산(安山)에 이주하여 오랫동안 학문과 서화에 전념하였다.

영조의 배려로 61세에 처음 벼슬길에 올라 64세 때 기구과(耆耉科), 66세 때 문신정시에 수석합격하였다. 관직은 영릉참봉(英陵參奉)사포별제(司圃別提)병조참의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등을 두루 거쳤다.

72세 때 북경사행(北京使行), 76세 때 금강산유람을 하고 기행문과 실경사생 등을 남겼다. 그의 생애에 있어서 관직생활과 예술활동 등은 정조의 배려에 크게 영향을 받았으며 더욱이 51세 때 영조가 신하들에게 그를 보호하여 그림 잘 그린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한 일을 계기로 오랫동안 절필(絶筆)했던 사실은 특기할만하다.
3. 업적과 화풍
시‧서‧화 삼절(三絶)로 일컬어졌으며, 남달리 높은 식견과 안목을 갖춘 사대부 화가로서 스스로 그림제작과 화평(畵評)활동을 통해 당시 화단에서 ‘예원의 총수’로 중추적인 구실을 하였다.

특히, 한국적인 남종문인화풍(南宗文人畵風)의 정착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진경산수(眞景山水)의 발전과 풍속화‧인물화의 유행, 새로운 서양화법의 수용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또한, 서화론‧서화평, 대나무 판각화, 사군자를 한벌로 짝맞추어 그리는 부분에서도 선구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의 서화가 개성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은 서화의 정통성과 올바른 방법에 관한 관심에서 나온 것으로, 참신하고 독자적인 서화관에 의해 실천적으로 문제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일생동안 진지하게 추구했던 서화의 세계는 궁극적으로 습기(習氣)‧속기(俗氣)가 없는 글씨와 문인화의 경지였다. 그림의 소재는 산수‧화훼(花卉)를 주로 다루었는데, 만년에는 묵죽(墨竹)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작품은 전시기를 통해 진정한 문인화, 격조높은 수묵화에 도달하기까지 발전적으로 전개되었으며, 공간감의 확대, 담백한 필치, 먹빛의 변화와 맑은 채색 등으로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하였다. 현존하는 작품은 상당수에 달하며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작품이 많아 체계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4. 작품
그의 작품으로는 「현정승집(玄亭勝集)」「첨재화보(忝齋畵譜)」「방동현재산수도(倣董玄宰山水圖)」「벽오청서도(碧梧淸暑圖)」「표현연화첩(豹玄聯畵帖)」「표암첩(豹菴帖)」「송도기행첩(松都紀行帖)」「약즙산수(藥汁山水)」「삼청도(三淸圖)」「피금정도(披襟亭圖)」「난죽도(蘭竹圖)」「묵죽팔폭병풍(墨竹八幅屛風)」「사군자병풍(四君子屛風)」「임왕서첩(臨王書帖)」「동기창임전인명적발(董其昌臨前人名迹跋)」「제의병(祭儀屛)」외 다수가 전한다.

특히, 54세 때 쓴 자서전인 『표옹자지(豹翁自誌)』에 들어 있는 2폭의 자화상을 비롯하여 7, 8여폭의 초상화를 남긴 사실이 독특하다.

묘소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에 있고, 시호는 헌정(憲靖)이다.

1979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그의 문집인 『표암유고』를 영인, 출판하였다.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豹菴遺稿
經山集
警修堂全藁
海巖稿
槿域書畵徵(吳世昌, 啓明俱樂部, 1928)
姜豹菴(崔淳雨, 考古美術 110, 1971)
豹菴姜世晃의 山水畵硏究(裵貞龍, 考古美術 138‧139, 1978)
豹菴姜世晃의 繪畵硏究(邊英燮,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박사학위논문, 1986)

[이미지]

[집필자]

변영섭(邊英燮)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