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柳誼)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720C758FFFFB1734X0 |
자(字) | 의지(誼之) |
생년 | 1734(영조 10)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유선양(柳善養) |

[상세내용]
유의(柳誼)
1734년(영조 10)∼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의지(誼之). 대사간 유선양(柳善養)의 아들이다.
1769년(영조 45)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78년(정조 2) 정언‧지평 등을 거쳐 홍문관에 들어갔다.
1780년과 그 이듬해에 강원‧관서의 암행어사로 나아갔고, 1781년 실록청도청낭청(實錄廳都廳郞廳)이 되어 『경종개수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듬해에 병조참의, 1786년 대사간, 1789년 병조참판에서 2년 뒤에 다시 대사간으로 전임되었고, 1797년 승지, 이어 홍주목사로 나아가 관에 대한 백성의 경비부담을 줄여줄 것을 조정에 건의하여 탕감하였다.
1797년 대사헌으로 치사하였다. 조정에서는 신중한 언행으로 구임(久任)하였고, 목민관으로 나아가서는 검소함과 위의(威儀)로써 간활(奸猾)을 그치게 하였다.
1769년(영조 45)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78년(정조 2) 정언‧지평 등을 거쳐 홍문관에 들어갔다.
1780년과 그 이듬해에 강원‧관서의 암행어사로 나아갔고, 1781년 실록청도청낭청(實錄廳都廳郞廳)이 되어 『경종개수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듬해에 병조참의, 1786년 대사간, 1789년 병조참판에서 2년 뒤에 다시 대사간으로 전임되었고, 1797년 승지, 이어 홍주목사로 나아가 관에 대한 백성의 경비부담을 줄여줄 것을 조정에 건의하여 탕감하였다.
1797년 대사헌으로 치사하였다. 조정에서는 신중한 언행으로 구임(久任)하였고, 목민관으로 나아가서는 검소함과 위의(威儀)로써 간활(奸猾)을 그치게 하였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正祖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반윤홍(潘允洪)
성명 : "유의(柳誼)"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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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