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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운(沈翔雲)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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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봉여(鳳汝)
생년1732(영조 8)
졸년1776(정조 즉위)
시대조선후기
본관청송(靑松)
활동분야문신 > 문신
심일진(沈一鎭)
조부심사순(沈師淳)
증조부심익창(沈益昌)
5대조심익현(沈益顯)

[상세내용]

심상운(沈翔雲)
1732년(영조 8)∼1776년(정조 즉위).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봉여(鳳汝). 효종의 부마였던 심익현(沈益顯)의 현손, 현령 심일진(沈一鎭)의 아들이며, 심익운(沈翼雲)의 형이다.

본래 청평위의 후손으로서 명문의 혈통을 이어받았으나, 그의 아버지가 박상검(朴尙儉)의 사건에 연루되었던 역적 심익창(沈益昌)의 손자인 심사순(沈師淳)의 양자로 입적되어 벼슬길이 평탄하지 못하였다.

동생 심익운이 과거에 급제하고서도 역적의 후손이라 하여 관직에 오르지 못하자, 1762년(영조 38) 심일진심익운과 함께 심사순의 양자로 입적된 사실을 인멸하려다가 물의를 일으킴으로써 일가가 모두 인륜을 어지럽히는 무리로 지목되어 사류의 배척을 받았다.

그뒤 1764년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에 의하여 오명이 벗겨짐으로써 비로소 사축서별제(司畜署別提)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고, 1771년 감시(柑試)에 급제하여 전시(殿試)에 직부(直赴)하였으며, 이듬해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74년 승지로 임명되었다.

이때 정후겸(鄭厚謙)홍인한(洪麟漢) 등이 세손(世孫: 뒤에 正祖)의 대리청정을 막으려다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들의 사주를 받고 부사직으로서 세손의 사부(師傅)와 빈료(賓僚)를 비난하면서, 세손을 ‘온실수(溫室樹)’에 비유하는 흉서를 올렸다.

이에 세손이 마침내 사위(辭位)하려는 뜻을 밝히기에 이르자 삼사가 나서서 흉서를 올린 사실을 들어 탄핵하게 되었다. 대직(臺職: 사헌부의 벼슬)도 아닌 군직(軍職)에 있으면서 당명(黨名)을 늘어놓아 세손을 해하려 하였다는 탄핵과 함께 영조로부터 가면을 쓴 ‘박상검’이라 지목되어, 동생 심익운과 함께 서인(庶人)으로 폐출됨과 동시에 흑산도로 유배되었다가 뒤에 제주도로 이배되었다.

그뒤 1776년에 정조가 즉위하자 삼사의 상소로 인해 중앙으로 붙들려와 정조의 친국을 받은 뒤 주살되었고, 이때 홍인한 부자와 정후겸 등도 사사되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明義錄
國朝榜目

[집필자]

박광용(朴光用)
대표명심상운(沈翔雲)
상운(翔雲)
성명심상운(沈翔雲)
봉여(鳳汝)

성명 : "심상운(沈翔雲)"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待闡錄v3溫室樹乎邸下苟能博求眞知實踐之士端良敦重之人置之左右前後以資啓沃而責輔導則爲進學之一助也云云傳曰今聞沈翔雲上書萬萬駭憤予何顔拜驪州慈聖翔雲兄弟與其父歸本宗此可謂毛將焉傳者也備忘記逆種翔雲令該府嚴訊一次發配加
待闡錄v3政行朝參陳賀是後凡用兵刑人除拜三司入于大朝其他大小公事皆入于東宮決之王世孫聽政後時原任皆赦設慶科司直沈翔雲上疏略曰郇模廣陵男子耳尙此痛哭於市書達於上做一字言一事云云臣請以八字爲獻前五字黨戚科官讒爲先事之戒後
小華龜鑑v19相集日記中上敎所擧皇兄下敎及麟漢三不必知之說皆不錄令改書以入相集推托不改至是領相金尙喆請拿問從之○鞫沈翔雲配絶島判府事金陽澤等奏翔雲上書事上命刑推荐棘黑山島○執義申應顯上書請洪麟漢明正典刑不從○丙申正月竄尹
柔兆涒灘(丙申)v2應敎鄭元始掌令柳榮鎭 ∙鄭宇淳 持平朴聖泰獻納李儒慶 所啓文氏 事厚謙 母子事洪 事上曰不允兩司合啓沈翔雲事不允大司憲李聖圭 等所啓趙德昌 事金壽賢 事不允又所啓洪述海身爲方伯之任犯贓之數至於萬兩之多道臣旣
韓史綮v2福瑩中之職命世孫代聽政頒敎中外○鄭厚謙度王世孫他日必以先世子之故而不容已之母子乃與洪麟漢連謀欲圖之誘沈翔雲上書于世孫羅織東宮官僚之罪欲先去其羽翼以孤其勢世孫知之令大臣奏聞竄翔雲于黑山島厚謙等姑置不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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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