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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검(朴尙儉)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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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702(숙종 28)
졸년1722(경종 2)
시대조선후기
본관충주(忠州)
활동분야관료 > 환관
출신지평안도 영변

[상세내용]

박상검(朴尙儉)
1702년(숙종 28)∼1722년(경종 2). 경종 때의 환관(宦官). 본관은 충주(忠州). 평안도 영변 출신.

어려서 바로 이웃집에 살고 있던 심익창(沈益昌)에게 수학하였다. 마침 김일경(金一鏡)원휘(元徽)가 차례로 영변부사로 부임하여 심익창의 집에 자주 드나들게 되자 이들과 친교를 맺게 되었다.

뒤에 궁궐에 환관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당시 김일경박필몽(朴弼夢)을 필두로 한 소론측은 연잉군(延礽君: 뒤의 영조)이 왕세제(王世弟)로 책봉되는 것을 저지하려다 실패하자, 그를 이용하여 왕세제를 제거하려 하였다.

이때 김일경으로부터 윤취상(尹就商)원휘심익창 등을 통하여 은화 수천냥을 받아 이를 이용하여 환관과 궁녀들을 매수해놓고, 1722년 1월 궁 안에 돌아다니는 여우를 잡는다는 구실로 청휘문(淸暉門)에 여우덫을 놓고 함정을 파놓아 왕세제가 경종에게 문안을 드리거나 시선(視膳: 왕세제나 왕세자가 왕의 수라상을 살피는 일)하러 가는 길을 가로막아 경종과 왕세제 사이에 불화를 조성함과 함께, 대전(大殿)의 궁녀들로 하여금 왕세제를 헐뜯는 말을 하게 함으로써 왕세제를 제거하려 하였다.

이에 왕세제가 그날 밤 입직궁관(立直宮官)과 익위사관(翊衛司官)을 불러모아 놓고 환관 한두명이 나를 제거하려 하니 그들의 독수(毒手)를 피하기 위하여 사위(辭位)하려 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튿날 아침 대신들의 주청으로 주모자를 국문하라는 경종의 명이 내려 국문이 시작되었다.

이때 왕세제로부터 지목받은 그와 환관 문유도(文有道)는 곧 주륙(誅戮)되었고, 나인 석렬(石烈)필정(必貞)은 자살함으로써 사건의 전모는 채 밝혀지기도 전에 마무리지어졌다.

뒤에 김일경은 신임사화 때의 죄목으로 영조가 즉위하자 곧 사형당하였고, 사건의 전모는 1725년(영조 1)에 환관 손형좌(孫荊佐)를 국문할 때 조금씩 드러났다.

[참고문헌]

景宗實錄
景宗改修實錄
英祖實錄
闡義昭鑑

[집필자]

박광용(朴光用)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