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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한(鄭光漢)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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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수부(秀夫)
생년1720(숙종 46)
졸년1780(정조 4)
시대조선후기
본관온양(溫陽)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정광한(鄭光漢)
1720년(숙종 46)∼1780년(정조 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양보(良甫), 초자(初字)는 수부(秀夫). 어려서 부모를 여의었으나 사서(四書)에 능하여 약관에 이미 문필을 날렸다.

1744년(영조 20)에 생원이 되고, 1754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듬해에 정언이 되었다. 이어 지평교리경연시독관(經筵侍讀官)응교승지 등을 역임하였으며, 1762년 대사간이 되었다.

1764년 도승지한성부좌윤 등을 거쳐 다시 대사간이 되었다가 1768년 대사헌에 올랐으며, 이듬해 형조참판이 되었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경기도관찰사로 전직하였다가 이듬해 형조판서비변사제조를 거쳐 1778년(정조 2) 11월에 삼절연공행(三節年貢行)‧동지사행(冬至使行)때 정사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귀국하여 예조판서에 임명되었다. 항상 마음이 부드러웠고, 공사를 처리함에 공정하였으므로 죽은 뒤 사람들의 추모를 받았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國朝榜目
承政院日記
日省錄
同文彙考
耳溪集

[집필자]

손승철(孫承喆)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