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백흥(閔百興)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BFCBC31D765B1715X0 |
자(字) | 기지(起之) |
생년 | 1715(숙종 41)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여흥(驪興)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민형수(閔亨洙) |
조부 | 민진원(閔鎭遠) |

[관련정보]
[상세내용]
민백흥(閔百興)
1715년(숙종 41)∼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기지(起之).
판중추부사 민진원(閔鎭遠)의 손자로, 함경도관찰사 민형수(閔亨洙)의 아들이며, 우의정 민백상(閔百祥)의 동생이다.
목사로 있다가, 1762년(영조 38) 문묘작헌례시(文廟酌獻禮試)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형 민백상의 명망으로 영조의 특은을 입어 바로 판결사에 임명되었는데, 그해 같은달 임금이 금상문(金商門)에 나가 방방(放榜)하고 그를 승지에 임명하니, 사람들이 너무 지나친 예우라고 하였다.
두달 뒤 충청도관찰사가 되었으며, 그로부터 또 석달이 지난 뒤 대사간이 되었다가, 넉달 뒤 다시 승지가 되었다.
1765년 이조참의, 1767년 동지의금부사, 이듬해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좌윤‧예조참판‧승지‧공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768년 대사헌이 되었고, 1771년 이조참판에 임명되었다.
판중추부사 민진원(閔鎭遠)의 손자로, 함경도관찰사 민형수(閔亨洙)의 아들이며, 우의정 민백상(閔百祥)의 동생이다.
목사로 있다가, 1762년(영조 38) 문묘작헌례시(文廟酌獻禮試)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형 민백상의 명망으로 영조의 특은을 입어 바로 판결사에 임명되었는데, 그해 같은달 임금이 금상문(金商門)에 나가 방방(放榜)하고 그를 승지에 임명하니, 사람들이 너무 지나친 예우라고 하였다.
두달 뒤 충청도관찰사가 되었으며, 그로부터 또 석달이 지난 뒤 대사간이 되었다가, 넉달 뒤 다시 승지가 되었다.
1765년 이조참의, 1767년 동지의금부사, 이듬해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좌윤‧예조참판‧승지‧공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768년 대사헌이 되었고, 1771년 이조참판에 임명되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김능하(金綾夏)
명 : "백흥(百興)"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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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