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태(李世泰)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774C138D0DCB1698X0 |
| 자(字) | 계통(季通) |
| 호(號) | 동병(東屛) |
| 생년 | 1698(숙종 24) |
| 졸년 | 1770(영조 46)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진성(眞城) |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 부 | 이수경(李守經) |
| 외조부 | 안노석(安老石) |
| 출신지 | 예안 |

[상세내용]
이세태(李世泰)
1698년(숙종 24)∼1770년(영조 4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계통(季通), 호는 동병(東屛). 예안 출신.
이황(李滉)의 후손으로, 이수경(李守經)의 아들이며, 모친은 안노석(安老石)의 딸이다.
1744년(영조 20)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주서를 거쳐 1747년 지평을 지냈다. 주서로 있을 때 그 청명(淸名)을 날렸다.
1754년 정언이 되고 장령을 거쳐 뒤에 판결사가 되었다. 남포현감으로 있을 때 어사 채제공(蔡濟恭)이 왕에게 아뢰기를, “세태는 3년 동안 관직에 있으면서 월봉을 저축하여 민역(民役)을 보충하고 궁핍함을 다스렸으므로 이민(吏民)이 깊이 신뢰하고 있다.”고 하였다.
왕이 형조참의를 제수하였으나, 이때는 이미 그가 세상을 떠난 뒤였는데 조정이 알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이황(李滉)의 후손으로, 이수경(李守經)의 아들이며, 모친은 안노석(安老石)의 딸이다.
1744년(영조 20)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주서를 거쳐 1747년 지평을 지냈다. 주서로 있을 때 그 청명(淸名)을 날렸다.
1754년 정언이 되고 장령을 거쳐 뒤에 판결사가 되었다. 남포현감으로 있을 때 어사 채제공(蔡濟恭)이 왕에게 아뢰기를, “세태는 3년 동안 관직에 있으면서 월봉을 저축하여 민역(民役)을 보충하고 궁핍함을 다스렸으므로 이민(吏民)이 깊이 신뢰하고 있다.”고 하였다.
왕이 형조참의를 제수하였으나, 이때는 이미 그가 세상을 떠난 뒤였는데 조정이 알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嶺南人物考
國朝榜目
嶺南人物考
國朝榜目
[집필자]
전형택(全炯澤)
| 대표명 | 이세태(李世泰) |
| 성명 | 이세태(李世泰) |
성명 : "이세태(李世泰)"에 대한 용례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