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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李澥)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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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연(子淵)
호(號)농옹(聾翁)
시호(諡號)충민(忠敏)
생년1591(선조 24)
졸년1670(현종 11)
시대조선중기
본관함평(咸平)
활동분야변란 > 공신
이효원(李效元)
공신호정사공신(靖社功臣)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해(李澥)
1591년(선조 24)∼1670년(현종 11). 조선 후기의 공신.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자연(子淵), 호는 농옹(聾翁).

대사간 이효원(李效元)의 아들이다.

광해군 때 대북파의 정인홍(鄭仁弘)이이첨(李爾瞻) 등에 의하여 아버지가 절도(絶島)에 유배되고 형인 한림 이정(李瀞)이 울분을 참지 못하여 죽자, 그는 벼슬을 단념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책록되고 함릉군(咸陵君)에 봉하여졌다. 반정하던 날 심기원(沈器遠)이 궁중에 쌓여 있는 물건을 나누어 가지자고 하였으나 분연히 거절하였다. 공신에게 지급되는 전답을 모두 반환하여 청백한 사람으로 칭송이 높았다.

이듬해인 1624년 개성부유수가 되고, 그뒤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649년(인조 27) 인조가 죽자 장릉(長陵: 인조릉)의 수릉관(守陵官)이 되고, 이어서 형조판서를 지내다가 1652년(효종 3)에 병으로 사임하였다. 그해 한직인 판중추부사로 있다가 동지 겸 성절사(冬至兼聖節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인 1653년에 함릉부원군(咸陵府院君)에 진봉(進封)되고 공조판서가 되었다가 1669년(현종 10)에 치사하고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처음에 충정(忠靖)으로 시호를 받았다가, 숙종충민(忠敏)으로 개시되었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肅宗實錄
朝野輯要
國朝人物志

[집필자]

이재범(李在範)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0-04-02손와(損窩) 최석항(崔錫恒) 撰 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世子師行奮忠贊謨立紀靖社功臣輔國崇祿大夫咸陵府院君兼判義禁府事工曹判書五衛都揔府都捴管致仕奉朝賀李公諡狀을 참고하여 생년 1591(선조 24)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