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감(權瑊){2}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AD8CAC10FFFFB1673X0 |
자(字) | 덕장(德章) |
생년 | 1673(현종 14) |
졸년 | 1747(영조 23)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안동(安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권성(權𢜫) |
[상세내용]
권감(權瑊)
1673년(현종 14)∼1747년(영조 2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덕장(德章).
부친은 우참찬 권성(權𢜫)이다.
1710년(숙종 36)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그뒤 장릉참봉이 되었다.
1728년(영조 4) 전의현감으로 있을 때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는데, 그를 시기하던 박필현(朴弼顯)이 반란에 가담하여 궁지에 빠뜨렸으나 이를 피해 전주로 내려가 이민(吏民)을 규합, 반군토벌에 전력하였다.
그해에 전주판관이 되고, 1737년 남원현령에 임명되었다. 남원은 본래 부(府)였으나 죄인이 많아 현으로 강등되었는데, 수령으로 부임한 뒤 엄하게 다스리는 한편, 읍민을 교화하여 다시 부로 환원되었고, 그는 부사가 되었다.
1738년 형벌을 과도히 하여 파직되었으나 다시 서용되어 1744년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부친은 우참찬 권성(權𢜫)이다.
1710년(숙종 36)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그뒤 장릉참봉이 되었다.
1728년(영조 4) 전의현감으로 있을 때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는데, 그를 시기하던 박필현(朴弼顯)이 반란에 가담하여 궁지에 빠뜨렸으나 이를 피해 전주로 내려가 이민(吏民)을 규합, 반군토벌에 전력하였다.
그해에 전주판관이 되고, 1737년 남원현령에 임명되었다. 남원은 본래 부(府)였으나 죄인이 많아 현으로 강등되었는데, 수령으로 부임한 뒤 엄하게 다스리는 한편, 읍민을 교화하여 다시 부로 환원되었고, 그는 부사가 되었다.
1738년 형벌을 과도히 하여 파직되었으나 다시 서용되어 1744년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圃巖集
圃巖集
[집필자]
문수홍(文守弘)
성명 : "권감(權瑊)"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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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