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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한(李翊漢){2}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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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여익(汝翼)
생년1659(효종 10)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상연(李尙淵)

[상세내용]

이익한(李翊漢)
1659년(효종 10)∼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익(汝翼). 이상연(李尙淵)의 아들이다.

1700년(숙종 26) 진사로 춘당대문과(春塘臺文科)에 장원급제하였다.

그뒤 1704년 사헌부장령에 취임하여 기강을 확립하고자 노력하였으나, 때로는 반대파의 모함을 받아 곤경에 빠진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뒤에도 여러 차례 장령을 지낸 것으로 보아 관기확립에 적당한 사람으로 인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1709년 임양군(臨陽君)진하사(陳賀使)중국에 갔을 때 그 서장관으로 동행하여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기도 하였으며, 그 이듬해에 사간원헌납을 거쳐 다시 장령이 되었는데, 이때 그는 사람이 재략만 있으면 신분적 제한을 초월하여 발탁하자는 탁월한 주장을 하여 왕의 호의적 반응을 받기도 하였다.

같은해 또다시 헌납으로 부임하여 범죄수사에 있어서 신속 정확을 주장하면서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참군 윤석래(尹錫來)안산군수(安山郡守) 윤식(尹寔) 등의 처벌을 요청하였다.

1714년 좌부승지가 되고 1722년(경종 2) 강원도관찰사로 나갔으며, 2년 뒤 다시 경기도수군절도사로 자리를 옮겨 양역(良役)의 고통과 백성의 부담을 줄이도록 상소하였다.

1727년(영조 3) 병조참판이 되었다가 1732년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으로 자리를 옮긴 뒤 2년 후 동지의금부사에 취임하였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김호종(金昊鍾)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