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홍(兪命弘)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0BA85D64DB1656X0 |
자(字) | 계의(季毅) |
호(號) | 죽리(竹里) |
시호(諡號) | 장헌(章憲) |
생년 | 1655(효종 6) |
졸년 | 1729(영조 5)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기계(杞溪)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유석(兪晳) |
[관련정보]
[상세내용]
유명홍(兪命弘)
1655년(효종 6)∼1729년(영조 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계의(季毅), 호는 죽리(竹里). 유석(兪晳)의 아들이다.
1672년(현종 13) 진사가 되고,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88년 지평이 되었으나 이듬해 기사환국으로 파직되고, 1692년 헌부(憲府)의 요청으로 형 유명웅(兪命雄)과 같이 사판(仕版)이 삭거(削去)되었다.
이는 고(故) 참판 유헌(兪櫶)의 질자라는 이유로 질시(嫉視)된 때문이다.
1694년 갑술옥사로 서인이 집권하자 다시 등용되어 장령‧정언‧헌납을 거쳐 양서지방(兩西地方)과 호서지방을 암행염찰(暗行廉察)하였다.
1702년 궁가절수(宮家折受)의 폐해를 상소하여 백성을 심히 괴롭히는 것을 모두 재감(裁減)시켜 백성들을 소생하게 할 것을 진언하였다.
1718년 도승지, 이듬해에 대사간이 되고, 1721년(경종 1) 한성좌윤‧전라감사가 되었다. 이해 신임사화로 노론이 추방되자 파직되어 유배되었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고 노론이 집권하자 이듬해 대사간‧경기감사가 되고, 1726년(영조 2) 한성판윤‧예조판서, 1727년 우참찬이 되었다. 시호는 장헌(章憲)이다.
1672년(현종 13) 진사가 되고,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88년 지평이 되었으나 이듬해 기사환국으로 파직되고, 1692년 헌부(憲府)의 요청으로 형 유명웅(兪命雄)과 같이 사판(仕版)이 삭거(削去)되었다.
이는 고(故) 참판 유헌(兪櫶)의 질자라는 이유로 질시(嫉視)된 때문이다.
1694년 갑술옥사로 서인이 집권하자 다시 등용되어 장령‧정언‧헌납을 거쳐 양서지방(兩西地方)과 호서지방을 암행염찰(暗行廉察)하였다.
1702년 궁가절수(宮家折受)의 폐해를 상소하여 백성을 심히 괴롭히는 것을 모두 재감(裁減)시켜 백성들을 소생하게 할 것을 진언하였다.
1718년 도승지, 이듬해에 대사간이 되고, 1721년(경종 1) 한성좌윤‧전라감사가 되었다. 이해 신임사화로 노론이 추방되자 파직되어 유배되었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고 노론이 집권하자 이듬해 대사간‧경기감사가 되고, 1726년(영조 2) 한성판윤‧예조판서, 1727년 우참찬이 되었다. 시호는 장헌(章憲)이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이봉래(李鳳來)
명 : "명홍(命弘)"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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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