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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득일(兪得一)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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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영숙(寧叔)
호(號)귀와(歸窩)
생년1650(효종 1)
졸년1712(숙종 38)
시대조선중기
본관창원(昌原)
활동분야문신 > 문신
유창(兪瑒)

[상세내용]

유득일(兪得一)
1650년(효종 1)∼1712년(숙종 38).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영숙(寧叔), 호는 귀와(歸窩).

참판 유창(兪瑒)의 아들이다. 박세채(朴世采)의 문인이다.

1675년(숙종 1) 생원이 되고, 1677년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682년 지평이 되어 이듬해 서인의 과격파인 김익훈(金益勳)이 남인을 완전제거하려고 모반설을 조작하자, 같은 서인의 소장파로 그 간계를 폭로하고 처벌을 주장하다가 진도군수로 좌천, 이어 파직되었다.

1686년 부수찬으로 기용되고, 정언교리검상승지를 역임하고, 1695년 대사간이 되었다.

이듬해 강원도관찰사가 되고, 전라도함경도관찰사를 역임한 뒤 대사성대사헌이조참판을 거쳐, 1704년(숙종 30) 형조판서에 이어 병조판서에 전직, 이정청당상(釐整廳堂上)을 겸임하여 군정(軍政)의 쇄신에 힘썼다.

1706년 동지사(冬至使)청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 형조판서가 되었으나 1710년 아내를 죽인 이만운(李萬運)의 송사처리가 지연되고 있다는 죄인의 처남 심일녕(沈一寧)의 격고(擊鼓)로 파직되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정덕기(鄭德基)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