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득우(洪得禹)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64DB4DDC6B0B1641X0 |
자(字) | 숙범(叔範) |
호(號) | 수졸재(守拙齋) |
생년 | 1641(인조 19) |
졸년 | 1700(숙종 26)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남양(南陽[唐])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홍중보(洪重普) |
조부 | 홍명구(洪命耉) |
외조부 | 이현영(李顯英) |
[상세내용]
홍득우(洪得禹)
1641년(인조 19)∼1700년(숙종 2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唐]). 자는 숙범(叔範), 호는 수졸재(守拙齋).
관찰사 홍명구(洪命耉)의 손자로, 우의정 홍중보(洪重普)의 아들이며, 모친은 이조판서 이현영(李顯英)의 딸이다. 송준길(宋浚吉)과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1662년(현종 3) 사마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1670년 음보로 정릉참봉(靖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임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1674년 전설사별좌에 기용된 뒤 군자감주부‧공조좌랑을 거쳐, 통진현감에 제수되었다가 병으로 사임하였다.
1676년(숙종 2) 스승 송준길이 오례문제(誤禮問題)로 관작을 추탈당하자, 그 부당함을 상소하였다가 무안에 유배되었으나 그해 겨울에 사면되었다.
그뒤 장악원과 사복시의 주부, 호조좌랑 등을 거쳐 1683년 담양부사로 부임하여 심한 흉년으로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을 잘 구휼하여 그 공로로 첨지중추부사에 올랐고, 순흥‧밀양‧삼척‧안동 등의 부사를 역임한 뒤 1700년에 강원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기 전에 죽었다.
스승의 무고를 벗기려 일생 동안 힘썼고, 수령의 직임을 맡아서는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었다.
관찰사 홍명구(洪命耉)의 손자로, 우의정 홍중보(洪重普)의 아들이며, 모친은 이조판서 이현영(李顯英)의 딸이다. 송준길(宋浚吉)과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1662년(현종 3) 사마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1670년 음보로 정릉참봉(靖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임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1674년 전설사별좌에 기용된 뒤 군자감주부‧공조좌랑을 거쳐, 통진현감에 제수되었다가 병으로 사임하였다.
1676년(숙종 2) 스승 송준길이 오례문제(誤禮問題)로 관작을 추탈당하자, 그 부당함을 상소하였다가 무안에 유배되었으나 그해 겨울에 사면되었다.
그뒤 장악원과 사복시의 주부, 호조좌랑 등을 거쳐 1683년 담양부사로 부임하여 심한 흉년으로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을 잘 구휼하여 그 공로로 첨지중추부사에 올랐고, 순흥‧밀양‧삼척‧안동 등의 부사를 역임한 뒤 1700년에 강원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기 전에 죽었다.
스승의 무고를 벗기려 일생 동안 힘썼고, 수령의 직임을 맡아서는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었다.
[참고문헌]
顯宗實錄
肅宗實錄
國朝人物考
肅宗實錄
國朝人物考
[집필자]
신해순(申解淳)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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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