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양(申懷)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2E0C591FFFFB1630X0 |
자(字) | 자평(子平) |
호(號) | 관곡(寬谷) |
생년 | 1630(인조 8) |
졸년 | 1706(숙종 32)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평산(平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신민일(申敏一) |
[관련정보]
[상세내용]
신양(申懷)
1630년(인조 8)∼1706년(숙종 3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자평(子平), 호는 관곡(寬谷). 대사성 신민일(申敏一)의 아들이다.
1657년(효종 8)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78년(숙종 4)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80년 사헌부지평이 되어 사은 겸 진주사(謝恩兼陳奏使) 김수흥(金壽興)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북경에 가서 인경왕후(仁敬王后)의 부음을 전하였다.
그뒤 사헌부장령을 거쳐 경성부판관에 전임되었다가, 다시 장령으로 돌아와 외척의 전횡을 억제할 것을 상소하였다.
이때 의정부에서 홍문관 예비관원 10인을 뽑을 때 그에 선임되어 홍문록에 올랐다. 뜻이 맞지 않으면 연장자에게도 공박을 멈추지 않아 한때 투옥된 일도 있었고, 1695년(숙종 21)에는 대사간으로서 장희빈(張禧嬪)의 오빠 장희재(張希載)를 탄핵하기도 하였다.
1657년(효종 8)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78년(숙종 4)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80년 사헌부지평이 되어 사은 겸 진주사(謝恩兼陳奏使) 김수흥(金壽興)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북경에 가서 인경왕후(仁敬王后)의 부음을 전하였다.
그뒤 사헌부장령을 거쳐 경성부판관에 전임되었다가, 다시 장령으로 돌아와 외척의 전횡을 억제할 것을 상소하였다.
이때 의정부에서 홍문관 예비관원 10인을 뽑을 때 그에 선임되어 홍문록에 올랐다. 뜻이 맞지 않으면 연장자에게도 공박을 멈추지 않아 한때 투옥된 일도 있었고, 1695년(숙종 21)에는 대사간으로서 장희빈(張禧嬪)의 오빠 장희재(張希載)를 탄핵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號譜
歸鹿集
號譜
歸鹿集
[집필자]
이재호(李載琥)
성명 : "신양(申讓)"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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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