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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연(柳炳然)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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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문숙(文叔)
시호(諡號)충의(忠毅)
생년1625(인조 3)
졸년1681(숙종 7)
시대조선중기
본관진주(晉州)
활동분야무신 > 무신
유충걸(柳忠傑)
출신지공주
공신호원종공신(原從功臣)

[관련정보]

[상세내용]

유병연(柳炳然)
1625년(인조 3)∼1681년(숙종 7).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土]). 자는 문숙(文叔). 공주 출신. 익위(翊衛) 유충걸(柳忠傑)의 아들이다.

1648년(인조 26)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고 여러 벼슬을 거쳤다. 길주목사로 있을 때에는 수로를 파서 농사에 도움을 주어 백성들의 신뢰를 받았다.

1664년(현종 5) 한성부좌윤을 거쳐, 1672년 함경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이때에 정령(政令)을 엄명히 하고 기강을 확립시키려 하였으나 백성들이 이를 매우 불편하게 여겼고, 관찰사가 또한 그의 죄를 거짓으로 꾸며 보고하여 중형을 받게 되었으나 대장 신여철(申汝哲)이 그의 강직함과 청렴 공명함을 증언하고 변호하여 파직에 그쳤다.

그뒤 다시 부총관으로 임명되어 포도대장전라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고, 경기통어사를 지내고 죽으니,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사람됨이 견실하고 신중하였으며 여러 고을에 나갔으면서도 어디에서든 재화를 취하는 일이 없었고 일생을 청빈하게 살았다.

송시열(宋時烈)이 귀양갔을 때 허적(許積)윤휴(尹鑴) 등이 송시열을 사형하도록 주청하였는데, 그는 목숨을 걸고 앞장 서서 동지들을 이끌고 소문(疏文)으로 극간하여 구제하려 하였으나 일이 무사히 해결되어 그만두었다.

뒤에 송시열이 그의 비문을 지을 때 이 사실을 기록하여 깊이 통탄하였다. 형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참고문헌]

顯宗實錄
國朝人物考
晉陽忠義世編

[집필자]

오성(吳星)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