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매(李時楳)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2DCB9E4B1603X0 |
자(字) | 자화(子和) |
호(號) | 육은재(六隱齋) |
생년 | 1603(선조 36) |
졸년 | 1667(현종 8)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춘영(李春英) |
[상세내용]
이시매(李時楳)
1603년(선조 36)∼1667년(현종 8).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화(子和), 호는 육은재(六隱齋). 이춘영(李春英)의 아들이다.
1629년(인조 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29년 정언을 거쳐 1635년 부수찬‧검토관‧수찬‧부교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639년에는 정치화(鄭致和) 등과 같이 암행어사로 파견되었고, 헌납‧부응교‧응교‧사간 등 삼사의 요직을 담당하였다.
1647년 다시 외직에 임명되어 의주부윤이 되었으나, 의주가 궁벽하여 생활하기 힘들다고 여기고 차라리 해임되어 서울로 돌아가기를 꾀하였다.
다음해 마침 큰 홍수로 압록강이 범람하여 관청의 배 수십척이 유실되자, 이것을 계기로 평안도관찰사 정치화로 하여금 자신의 파직상소를 올리게 하였다. 마침내 파직이 되었으나, 이러한 계획된 의도가 드러나 탄핵을 받고 정주에 유배되었다.
효종 때 재기용되어 승지‧강화부유수‧도승지 등을 지냈으나, 1652년(효종 3) 뇌물수수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덕원으로 유배되었다. 현종 즉위 후 다시 관직에 나아가 공조참판이 되었다. 이후 호조참판‧형조참판‧경기도관찰사를 거쳐 한성부우윤에 이르렀다.
1629년(인조 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29년 정언을 거쳐 1635년 부수찬‧검토관‧수찬‧부교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639년에는 정치화(鄭致和) 등과 같이 암행어사로 파견되었고, 헌납‧부응교‧응교‧사간 등 삼사의 요직을 담당하였다.
1647년 다시 외직에 임명되어 의주부윤이 되었으나, 의주가 궁벽하여 생활하기 힘들다고 여기고 차라리 해임되어 서울로 돌아가기를 꾀하였다.
다음해 마침 큰 홍수로 압록강이 범람하여 관청의 배 수십척이 유실되자, 이것을 계기로 평안도관찰사 정치화로 하여금 자신의 파직상소를 올리게 하였다. 마침내 파직이 되었으나, 이러한 계획된 의도가 드러나 탄핵을 받고 정주에 유배되었다.
효종 때 재기용되어 승지‧강화부유수‧도승지 등을 지냈으나, 1652년(효종 3) 뇌물수수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덕원으로 유배되었다. 현종 즉위 후 다시 관직에 나아가 공조참판이 되었다. 이후 호조참판‧형조참판‧경기도관찰사를 거쳐 한성부우윤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顯宗實錄
國朝榜目
孝宗實錄
顯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최진옥(崔珍玉)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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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