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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발(李起浡)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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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패연(沛然)
호(號)서귀(西歸)
생년1602(선조 35)
졸년1662(현종 3)
시대조선중기
본관한산(韓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극함(李克諴)
완산최씨(完山崔氏)
조부이준철(李遵哲)
증조부이치(李穉)
처부박동진(朴東振)
외조부최준극(崔峻極)
출신지전라북도 전주(全州)
저서『서귀집(西歸集)』

[상세내용]

이기발(李起浡)
1602년(선조 35)∼1662년(현종 3). 조선 중기 문신. 자는 패연(沛然)이고, 호는 서귀(西歸)이다.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전라북도 전주(全州) 출신이다.

증조부는 이치(李穉)이고, 조부는 이준철(李遵哲)이며, 부친은 이극함(李克諴)이다. 모친은 완산최씨(完山崔氏) 최준극(崔峻極)의 딸이고, 부인은 박동진(朴東振)의 딸이다. 형은 이흥발(李興浡)이며, 동생은 이생발(李生浡)이다.

이흥발(李興浡), 동생 이생발(李生浡)과 함께 석계(石溪) 최명룡(崔命龍)의 문인이 되어 학문을 닦았다. 1618년(광해군 10)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여 서궁(西宮)에 유폐하자, 국모가 없는 나라라고 한탄하며 은거(隱居)하였다.

인조반정 이후 1624년(인조 2) 갑자(甲子) 증광시(增廣試) 생원(生員) 3등 3위로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는데, 같은 시험에서 형 이흥발과 동생 이생발까지 삼형제가 동시에 합격하여 이름을 날렸다. 이후 성균관에 입학하였고, 1627년(인조 5) 정묘(丁卯)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 1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은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성균박사(成均博士), 정언(正言), 예조정랑(禮曹正郞), 시강원필선(侍講院弼善), 지평(持平) 등을 역임했다.

1636년 대동찰방(大同察訪)으로 있을 때에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당시 옥과현감(玉果縣監)이었던 형 이흥발, 순창군수 최온(崔薀), 전찰방(察訪) 유즙(柳楫), 전한림(前翰林) 양만용(梁曼容) 등과 더불어 의병을 모집하였다. 여산(礪山)의 모의소에서 다른 의병단과 합류한 후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진격하였으나, 화약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전주(全州)로 돌아가 은거하였다.

끝까지 청(淸)과의 화친을 반대하고 명(明)과의 의리를 주장하였으며, 인조가 승하하자 3년간 3년간 술과 고기를 마시거나 먹지않고 상례(喪禮)를 치르는 등 평생 충절(忠節)을 지켰다. 이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은 그를 동방의 백이(伯夷)숙제(叔齊)로 비교하면서 칭찬하기도 하였다.

부인 박씨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었는데, 이 중 아들은 1660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병조정랑(兵曹正郞)을 지낸 이유룡(李猶龍)이다. 사후 1668년 서산사(西山祠)에 배향되었으며, 1673년 도승지(都承旨)에 추증(追贈)되었다. 1677년에는 조정에서는 그를 충절신(忠節臣)으로 정려(旌閭)하도록 명하였다. 유고로는 김병학(金炳學: 1821∼1879), 김상현(金尙鉉: 1811∼1890), 박규수(朴珪壽: 1807∼1876)가 서(序)를 쓴 10권 6책의 『서귀집(西歸集)』이 전한다. 이 문집은 1876년 그의 6세손인 이승윤(李承潤) 등에 의하여 편찬되었으며, 끝 부분에는 형인 이흥발의 문집 『운암유고(雲巖逸藁)』가 첨부되어 있다.

[참고문헌]

西歸集:(幷) 雲巖逸藁
규장각한국학연구원(http://e-kyujanggak.snu.ac.kr/)
한국고전적종합목록시스템(http://www.nl.go.kr/korcis/)

[집필자]

김은영
대표명이기발(李起浡)
성명이기발(李起浡)
패연(沛然)
서귀(西歸)

성명 : "이기발(李起浡)"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龍城誌n1-7책力共濟國難不勝幸甚 崇禎九年十二月二十五日 李興浡李起浡崔蕰梁曼容柳楫 黃廷稷李馥韓慶生金㵏李惟馨 房元震
湖南丙子倡義錄n1-2책 京城上幸南漢虜騎圍之甚急玉果縣監李興浡 大同察訪李起浡淳昌縣監崔薀前翰林梁曼容前 察訪柳楫五賢聞變各自奮
湖南丙子倡義錄n1-2책九年十二月二十五日玉果縣監李興浡 單緘 大同察訪李起浡 單緘 淳昌縣監崔薀 單緘 前翰林梁曼容 單緘
湖南丙子倡義錄n1-2책云公 生於萬曆庚子卒於顯廟壬子兪文翼拓基 撰墓銘 李起浡字沛然號西歸雲巖興浡之仲弟萬曆壬 寅生八歲受讀詩傳
湖南丙子倡義錄n1-2책 義將合勢至淸州西平原聞虜游騎逼在山谷間 軍情洶洶李起浡梁曼容往覘之公率勁卒五十 躡其後見李公被圍遂與梁公
湖南丙子倡義錄n1-2책無應者李起浡梁曼容挺身馳往公 與淸江公率勁卒躡其後李起浡爲賊所圍事甚 蒼黃公與淸江公梁曼容奮力衝進斬賊九級
湖南丙子倡義錄n1-2책當從間道直抵南漢諸將從其計翌日諸 將募覘賊勢無應者李起浡梁曼容挺身馳往公 與淸江公率勁卒躡其後李起浡爲賊所
湖南丙子倡義錄n1-2책丑正月初二十八日)○二十八日遇大風雪留軍尼城 縣與李起浡等講軍事午後進兵到公州界時忠淸 監司鄭世規軍敗奔還
湖南丙子倡義錄n1-2책三十日平明遍募各陣中 往覘山谷中賊勢莫有應者梁曼容李起浡奮身請 往卽令五六砲手隨後登山俯賊賊騎數百聚於谷
湖南丙子倡義錄n1-2책 崇禎九年十二月二十五日 玉果縣監李興浡 大同察訪李起浡 淳昌縣監崔薀 前翰林梁曼容 前察訪柳楫言 玉果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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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