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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창대군(綾昌大君)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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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이전(李佺)
시호(諡號)효민(孝愍)
생년1599(선조 32)
졸년1615(광해군 7)
시대조선중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왕실 > 왕자
신성군(信城君)
생부원종(元宗)
생모인헌왕후(仁獻王后)

[상세내용]

능창대군(綾昌大君)
1599년(선조 32)∼1615년(광해군 7). 조선 중기의 종실.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전(李佺). 선조의 손자, 원종(元宗: 定遠君)의 셋째아들, 인헌왕후(仁獻王后) 구씨(具氏)의 소생이며, 인조의 동생이다.

작은아버지 신성군(信城君)에게 입양되었다. 어려서부터 재지(才智)가 뛰어나고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하여 흉도(兇徒)들이 유언비어로써 현혹시키기를, “능창군은 기상이 비범하다.” 하고, 혹은 “정원군(定遠君)의 집에 왕기가 매우 성하다.” 하고, 혹은 “인빈(仁嬪)의 무덤자리가 매우 좋다.” 하였으므로 은연중 광해군의 시기를 받았다.

1615년(광해군 7) 신경희(申景禧)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고자 한다는 죄수 소명국(蘇鳴國)의 무고로 광해군에 의하여 교동(喬桐)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는데, 토인(土人) 고봉생(高封生)을 시켜 위리 안에 같이 거주하게 하고, 밖에서 항상 석회수(石灰水)로 밥을 지어 들여보내자 고봉생은 날마다 제 밥을 덜어서 주었다.

어느날 사람이 들어와서 문과 창을 모두 닫고 섶을 쌓아 그 아궁이에 불을 질렀다. 능창군은 죽음을 면하지 못할 줄 알고, 이에 손수 부모에게 영결(永訣)을 고하는 편지 한장을 써서 몰래 고봉생에게 부쳐 보내고 이내 목매어 17세로 죽었다.

이 사건의 주모자 신경희는 죽음을 당하고 양시우(楊時遇)김정익(金廷益)소문진(蘇文震)김이강(金以剛)오충갑(吳忠甲) 등은 귀양가게 되었는데, 이를 ‘신경희의 옥사’라 한다. 인조가 즉위하자 관봉(官封)이 되었고, 1632년 대군으로 추봉되었다. 시호는 효민(孝愍)이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宗班行蹟
記言別集
燃藜室記述

[집필자]

공원영(孔黿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