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희(申景禧)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2E0ACBDD76CD1615X0 |
생년 | ?(미상) |
졸년 | 1615(광해군 7)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평산(平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신잡(申磼) |
[상세내용]
신경희(申景禧)
미상∼1615년(광해군 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평산부원군(平山府院君) 신잡(申磼)의 아들이며, 도순변사(都巡邊使) 입(砬)의 조카이다.
1588년(선조 21) 음보(蔭補)로 임관되었다.
이듬해 정여립(鄭汝立)의 옥사가 일어나자 그 일당인 선홍복(宣弘福)을 붙잡은 공로로 6품직에 발탁되어 1591년 제용감주부(濟用監注簿)가 되었다.
1593년 고산현감으로 도원수 권율(權慄)의 휘하에 종군하여 공을 세우고 같은해 행주산성의 대첩보(大捷報)를 제일 먼저 왕에게 보고하였으며, 면천군수와 중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605년 재령군수로 재직중 순변사 이일(李鎰)의 종사관(從事官) 윤섬(尹暹)을 사칭하며 도당을 모아 횡행하던 윤세침(尹世沈)을 붙잡아 중앙에 보고할 때 공명심으로 장계(狀啓)를 날조한 사실이 발각되어 삭직되고 문외출송(門外黜送)의 처벌을 받았다.
뒤에 용서되어 1611년(광해군 3) 수안군수에 등용되었으나, 1615년 양시우(楊時遇)‧김정익(金廷益)‧소문진(蘇文震) 등과 반역을 모의하여 능창군(綾昌君) 전(佺)을 추대하려 하였다는 무고로 장살(杖殺)되었다.
1588년(선조 21) 음보(蔭補)로 임관되었다.
이듬해 정여립(鄭汝立)의 옥사가 일어나자 그 일당인 선홍복(宣弘福)을 붙잡은 공로로 6품직에 발탁되어 1591년 제용감주부(濟用監注簿)가 되었다.
1593년 고산현감으로 도원수 권율(權慄)의 휘하에 종군하여 공을 세우고 같은해 행주산성의 대첩보(大捷報)를 제일 먼저 왕에게 보고하였으며, 면천군수와 중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605년 재령군수로 재직중 순변사 이일(李鎰)의 종사관(從事官) 윤섬(尹暹)을 사칭하며 도당을 모아 횡행하던 윤세침(尹世沈)을 붙잡아 중앙에 보고할 때 공명심으로 장계(狀啓)를 날조한 사실이 발각되어 삭직되고 문외출송(門外黜送)의 처벌을 받았다.
뒤에 용서되어 1611년(광해군 3) 수안군수에 등용되었으나, 1615년 양시우(楊時遇)‧김정익(金廷益)‧소문진(蘇文震) 등과 반역을 모의하여 능창군(綾昌君) 전(佺)을 추대하려 하였다는 무고로 장살(杖殺)되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燃黎室記述
光海君日記
燃黎室記述
[집필자]
이정일(李貞一)
명 : "경희(景禧)"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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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