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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한(李昭漢)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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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도장(道章)
호(號)현주(玄洲)
생년1598(선조 31)
졸년1645(인조 23)
시대조선중기
본관연안(延安)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정귀(李廷龜)
출신지서울
저서『현주집』

[상세내용]

이소한(李昭漢)
1598년(선조 31)∼1645년(인조 2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도장(道章), 호는 현주(玄洲). 서울 출신. 좌의정 이정귀(李廷龜)의 아들이다.

타고난 자질이 준수하고 총명하여 신동으로 불렸다.

1612년(광해군 4) 진사시에 합격하고, 1621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나아가 벼슬하였다.

1623년(인조 1)인조반정과 함께 승문원주서를 거쳐 홍문관정자에 승진되면서부터 그의 풍부한 학식이 정부관료들간에 널리 인정되었다.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공주인조를 호종하였으며, 환도한 뒤에는 전란으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을 덜기 위한 절용애민(節用愛民)의 정치를 펼 것을 진언하였다.

그뒤 다시 수찬정언교리 등의 문관요직에 있으면서 상소로 혹은 왕을 모신 자리에서 정사와 왕실의 잘못을 진언하여 때로는 왕의 비위를 거슬리기도 하였다.

1626년 수찬으로서 중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같은해 10월에는 왕을 모신 자리에서 내수사를 파하여 국가공용에 보탬이 되게 할 것을 주청하였다.

1632년 신진유신들과 함께 인조의 사친(私親)인 정원군(定遠君)의 왕호추숭(王號追崇)을 반대하였다가 파직당하기도 하였다.

그뒤에 다시 등용되어 충원현감진주목사예조참의 등의 내외관직을 역임하였으며, 1643년 왕세자가 청나라 심양(瀋陽)에 볼모로 갈 때에 세자우부빈객 동지중추부사로 호종하여 보좌하였으며, 그 이듬해에 귀국하여 형조참판으로 비변사당상을 겸임하였다.

그는 시문에 능하고 글씨에 조예가 깊었으며, 20여년간 관계에서 활동하면서 「동사록(東槎錄)」‧「진양록(晉陽錄)」‧「심관록(瀋館錄)」‧「방축록(放逐錄)」 등의 시를 남겼다. 아버지 이정귀, 형 이명한(李明漢)과 함께 3소(三蘇)라 일컬어졌다.

시문집으로 『현주집』 7권이 있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月沙集
宋子大全

[집필자]

김용국(金龍國)
대표명이소한(李昭漢)
소한(昭漢)
성명이소한(李昭漢)
도장(道章)
현주(玄洲)

성명 : "이소한(李昭漢)"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紀年便攷v20命大提學金瑬選李敬輿李景義李景奭李昭漢尹墀等
紀年便攷v21李昭漢明漢弟李尙毅壻宣祖戊戌生字道章號玄洲學語時其父讀漢書在膝上請其義雖大篇作背念無違時稱神童文章與其兄齊
紀年便攷v22其使乃追至鞍峴平賊回軍策振武功二等封洪陽君在龍川建請政府等龍骨山城身自負石爲吏卒倡六閱月告訖上遣校理李昭漢巡龍骨賜壐書曰卿之忠勇爲西北長城累年邊塞艱苦必多予念卿常爲之不寧賜綵縀丁卯虜至諸城皆陷龍骨獨全希建率
小華龜鑑v12英字茂叔號疏庵持平竹崖說曾孫吳䎘字肅羽號天坡監司兵使定邦孫判書斗寅父李景義字子方號晩沙文壯吏參好閔侄李昭漢字道章號玄洲重試參判白洲弟尹墀字君玉號洛濱吏參趙錫胤蔡裕後見孝宗文衡錄朴漪字仲連號甲峯校理梧窓東亮子
國朝捷錄v01東溟克健子孝元孫廢母立異吳䎘天坡士廉子監司右金瑬選癸亥李敬輿見相李景奭見相李景義子方晩汝好閔侄尙閔子李昭漢道章玄洲白洲弟李志完妹夫尹墀洛濱字君玉新之子昉孫右金瑬又選趙絅見文翼男子漢陽人趙錫胤見文牙靜文孝公白
郯述v02李昭漢
東國續修文獻錄v1白江牧使綏祿子全州人領相文貞李景義子彥晩沙府使尙閔子延安人吏參李景奭尙輔白軒同知惟侃子全州人領相文忠李昭漢道章玄洲吏判明漢弟延安人吏判尹墀君玉海崇尉新之子海平人吏判
東國名儒錄n1책(李昭漢)李昭漢子平號玄洲諡文寧公月沙次子白洲弟也官至戶判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