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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립(柳孝立)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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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행원(行源)
생년1579(선조 12)
졸년1628(인조 6)
시대조선중기
본관문화(文化)
활동분야변란 > 모반인

[상세내용]

유효립(柳孝立)
1579년(선조 12)∼1628년(인조 6). 조선 중기의 모반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행원(行源). 유희분(柳希奮)의 조카이다.

1609년(광해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614년 사헌부정언병조정랑이 되고, 이듬해 필선, 1616년 수찬을 거쳐, 제용감정(濟用監正)군자감정을 지내고, 1618년에 영건도감도청(營建都監都廳)장악원정을 지냈으며, 다음해 보덕을 겸하고 호조참의를 거쳐 우부승지에 올랐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숙부 유희분이 참형되고 북인이 쫓겨나자 제천으로 유배되었다. 귀양살이하면서 몰래 다른 뜻을 품고, 항상 여인의 가마를 타고 서울에 있는 광해군 때의 옛 신하로서 새 조정을 원망하는 자들의 집을 내왕하면서 궁중의 시녀와 내시, 대궐문의 수장까지 통하여 대궐을 쉽게 침입할 수 있게 하였다.

자기의 아들과 무리들을 미리 서울에 잠입시키는 한편, 전세마(洗馬) 허유(許逌), 전좌랑 정심(鄭沁), 전전적 김탁(金鐸), 진사 유두립(柳斗立) 등과도 모의하고, 몰래 도감초관(都監哨官) 윤계륜(尹繼倫)과도 손을 잡아 내응하게 하였다.

1628년(인조 6) 1월 3일 전부사 허적(許樀)의 고변으로 거사 직전에 일이 탄로났다. 비변사에서 군사를 동원하여 고변한 허선(許選) 등과 함께 잠복하여 동대문과 남대문으로 무기를 싣고 들어오던 거사자들이 모두 체포되었다. 이로 인하여 광해군을 상왕으로 삼고 인성군(仁城君) 공(珙)을 추대하려는 유효립 등의 음모는 불발로 끝나고 이에 가담하였던 자는 모두 처형되었다.

한편, 고변한 허적 등은 영사공신(寧社功臣)에 책록되었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東國文獻錄

[집필자]

이장희(李章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