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국(尹弘國)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4D64DAD6DB1576X0 |
자(字) | 장경(長卿) |
생년 | 1576(선조 9) |
졸년 | 1615(광해군 7)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양주(楊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윤응상(尹應商) |
[상세내용]
윤홍국(尹弘國)
1576년(선조 9)∼1615년(광해군 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장경(長卿).
수운판관 윤응상(尹應商)의 아들이다.
정철(鄭澈)‧김장생(金長生)에게서 수학하였다. 생원으로 1601년(선조 34)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604년 병조좌랑‧춘추관기사관이 되어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왕조실록 재간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울산판관에 이어 북평사직강(北評事直講)‧용양위(龍驤衛)부호군이 되었다.
1615년(광해군 7)에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이듬해에 죽었다. 그가 하료(下僚)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정철이 탄핵을 받았을 때 이에 연좌되었으며, 간신 이이첨(李爾瞻)이 그를 꺼렸기 때문이다.
일찍이 성혼(成渾)을 만났을 때 그로부터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옛것을 사모하고 의를 중하게 여겼으며, 세속에 초연하고 안빈낙도를 몸소 실천하였다.
수운판관 윤응상(尹應商)의 아들이다.
정철(鄭澈)‧김장생(金長生)에게서 수학하였다. 생원으로 1601년(선조 34)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604년 병조좌랑‧춘추관기사관이 되어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왕조실록 재간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울산판관에 이어 북평사직강(北評事直講)‧용양위(龍驤衛)부호군이 되었다.
1615년(광해군 7)에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이듬해에 죽었다. 그가 하료(下僚)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정철이 탄핵을 받았을 때 이에 연좌되었으며, 간신 이이첨(李爾瞻)이 그를 꺼렸기 때문이다.
일찍이 성혼(成渾)을 만났을 때 그로부터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옛것을 사모하고 의를 중하게 여겼으며, 세속에 초연하고 안빈낙도를 몸소 실천하였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光海君日記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송정현(宋正炫)
명 : "홍국(弘國)"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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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