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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일(申敏一)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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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공보(功甫)
호(號)화당(化堂)
생년1576(선조 9)
졸년1650(효종 1)
시대조선중기
본관평산(平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신암(申黯)
저서『화당집』

[상세내용]

신민일(申敏一)
1576년(선조 9)∼1650년(효종 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공보(功甫), 호는 화당(化堂).

부친은 사재감첨정(司宰監僉正) 신암(申黯)이다.

1615년(광해군 7) 사마시를 거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학유(學諭)성현도찰방(省峴道察訪)감찰, 연서도찰방(延曙道察訪)은계도찰방(銀溪道察訪) 등을 지내다가 한때 관직을 사퇴하였다.

1624년(인조 2) 예조정랑으로 선릉(宣陵: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의 능) 단오제 전사관(典祀官)이었는데, 환관 나업(羅業)이 불경스런 행동을 취한 것을 구실로 환관들의 폐를 상소하여 이를 시정하게 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왕을 호종, 강화도로 피난하였고 청나라와의 화의에 반대하였다.

그뒤 장령사간 등을 거쳤으며, 1631년 보덕으로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定遠君)원종(元宗)으로 추숭하려는 의논이 일어나자 이를 반대하여 강계로 유배되었다.

1633년 유배에서 풀려났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갔다. 화의가 성립된 뒤에는 영남에 내려가 있다가 1640년 동부승지가 되고 이어 우승지에 임명되었으며, 1650년 대사성에 이르렀다.

시문집인 『화당집』이 전한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孝宗實錄
國朝榜目
知守齋集

[집필자]

정하명(鄭夏明)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