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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급(李尙伋)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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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사언(思彦)
호(號)습재(習齋)
시호(諡號)충강(忠剛)
생년1571(선조 4)
졸년1637(인조 15)
시대조선중기
본관벽진(碧珍)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희선(李喜善)

[상세내용]

이상급(李尙伋)
1571년(선조 4)∼1637년(인조 1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사언(思彦), 호는 습재(習齋). 동몽교관(童蒙敎官) 이희선(李喜善)의 아들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학문에 힘써 1605년 진사가 되고, 이듬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정자저작박사를 거쳐 형조좌랑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오던 중 평안도사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권신인 이이첨(李爾瞻)과 뜻이 맞지 않아 승진에 어려움이 많았다. 한때는 병을 빙자하여 벼슬을 그만둔 일도 있었으나 다시 형조정랑을 거쳐 풍기군수가 되었다.

이때 경상도관찰사정조(鄭造)가 임명되자, 그의 속관이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벼슬을 버리고 고향 성주로 돌아가 농사와 낚시로 소일하였다.

인조반정 후 다시 등용되었으나, 장령집의 등 대간으로 있을 때 직신(直臣)의 기품이 있어 싫어하는 자가 많았다. 단천군수연안군수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어 신망을 얻고 세자시강원보덕이 되었다. 이어 병조참지로 있을 때 치군(治軍)‧축성(築城) 등 국가방위에 공헌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 40여일 동안 대결하였다.

그러나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묘사(廟社)를 받들고 강화도로 들어간 형 이상길(李尙吉)을 찾아가다가, 도중에서 적병을 만나 살해되었다. 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강(忠剛)이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純祖實錄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丙子錄

[집필자]

홍순창(洪淳昶)

명 : "상급(尙伋)"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紀年便攷v29李世瑍尙伋曾孫字季章號栗齋朴世采門人甞自賛其像曰白髮■如憂道之深耶眉睫萬觓憂國之忱耶因號二憂堂英祖在東宫時為師
紀年便攷v29李世瑾尙伋曾孫蔭縣令志傑號琴湖子字聖珎號靜軒尹拯門人肅宗丁丑登庭試歷三司以嶺伯遭彈粧點衣裳殆類婦人□□貌㨾修餙
大事編年v10共極言甚不可命世曰配德儲宮當擇令族家犯惡逆者不宜廁其選兩司和之上怒命停其婚而黜自點于門外竄命世于忠州尙伋亦罷王子仁城君珙爲逆賊所引朝廷方請按法檢閱睦性善正字柳碩因求言敎上疏言廷論請誅仁城非愛君以德功臣之請
國朝人物志v3旌閭家狀尙吉兄尙喆字士保壬午進士乙酉文科聯璧官止評事國朝榜目三兄弟登第弟尙伋坰號東野文科知事
國朝人物志v3卽解歸忠州耕釣以爲樂諸生挾書請業者衆丙子從大駕入南漢傷痛國事日夜涕泣上幸三田尙伋痛哭曰和議之害一至此哉兄尙吉陪廟社入江都殉節尙伋聞之力疾西行遇兵被害官至兵曹
國朝人物志v3字秀夫號琴湖碧珍人參知尙伋孫進士蔭補縣令在盈德縣監時治土豪至斃三人其家訴于朝經年縲紲以濫刑遠配年七十以子世瑾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