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린(鄭麒麟)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815AE30B9B0B1570X0 |
| 자(字) | 성서(聖瑞) |
| 호(號) | 백자장(白字將) |
| 시호(諡號) | 충렬(忠烈) |
| 생년 | 1570(선조 3) |
| 졸년 | 1593(선조 26)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하동(河東) |
| 활동분야 | 무신 > 무신 |

| 부 | 정만주(鄭萬珠) |
| 출신지 | 전라남도 함평군(咸平郡) 수호리(水湖里) |

[상세내용]
정기린(鄭麒麟)
1570년(선조 3)∼1593년(선조 26).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자는 성서(聖瑞)이고, 호는 백자장(白字將)이며,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고, 전라남도 함평군(咸平郡) 수호리(水湖里) 출신이다.
부친은 정만주(鄭萬珠)이다.
1585년(선조 18) 16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좌부장(左部將)을 거쳐 사복내승(司僕內乘)을 역임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격문을 받고 의병 3천여 명을 모집하여 고경명의 막하로 들어갔다. 이때에 백의대검(白衣帶劍), 기백마(騎白馬), 건백기(建白旗) 삼백(三白)으로 뜻을 나타내어 선조에게 ‘백자장(白字將)’이라는 호를 받았다.
김천일(金千鎰: 1537∼1593)의 진영으로 들어가서 전라북도 남원(南原) 요천(蓼川)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후 진주성 전투에서 처음에는 승리를 거두었으나, 적의 재침에 성이 함락되자. 김천일 등은 남강(南江)에 투신 자결하고, 그는 다행히 탈출하였으나 순절하였다.
뒤에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으로 녹훈(錄勳)되었으며, 1649년(인조 27)에 정려와 함께 ‘충렬(忠烈)’이란 시호를 받았다.
본관은 하동(河東)이고, 전라남도 함평군(咸平郡) 수호리(水湖里) 출신이다.
부친은 정만주(鄭萬珠)이다.
1585년(선조 18) 16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좌부장(左部將)을 거쳐 사복내승(司僕內乘)을 역임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격문을 받고 의병 3천여 명을 모집하여 고경명의 막하로 들어갔다. 이때에 백의대검(白衣帶劍), 기백마(騎白馬), 건백기(建白旗) 삼백(三白)으로 뜻을 나타내어 선조에게 ‘백자장(白字將)’이라는 호를 받았다.
김천일(金千鎰: 1537∼1593)의 진영으로 들어가서 전라북도 남원(南原) 요천(蓼川)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후 진주성 전투에서 처음에는 승리를 거두었으나, 적의 재침에 성이 함락되자. 김천일 등은 남강(南江)에 투신 자결하고, 그는 다행히 탈출하였으나 순절하였다.
뒤에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으로 녹훈(錄勳)되었으며, 1649년(인조 27)에 정려와 함께 ‘충렬(忠烈)’이란 시호를 받았다.
[참고문헌]
함평군사
무안군지
무안군지
[집필자]
김은영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9-09-30 | 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