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우(梁亨遇)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591D615C6B0B1570X0 |
| 자(字) | 자발(子發) |
| 호(號) | 동애(東厓) |
| 생년 | 1570(선조 3) |
| 졸년 | 1623(인조 1)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남원(南原) |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 부 | 양대박(梁大樸) |
| 조부 | 양의(梁艤) |
| 증조부 | 양자윤(梁自潤) |
| 외조부 | 신지(申漬) |

[관련정보]
[상세내용]
양형우(梁亨遇)
1570년(선조 3)∼1623년(인조 1).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자발(子發), 호는 동애(東厓).
증조부는 양자윤(梁自潤)이고, 조부는 집의(執義) 양의(梁艤)이며, 부친은 증보국숭록대부(贈輔國崇祿大夫) 판중추부사 겸 병조판서(判中樞府事兼兵曹判書)‧의병대장(義兵大將) 청계도인(淸溪道人) 양대박(梁大樸)이다. 형은 점역재(點易齋) 양경우(梁慶遇)이고, 동생은 양신우(梁信遇)‧양희우(梁熙遇)다. 외조부는 부사직(副司直) 신지(申漬)이다. 34세인 1603년(선조 36) 계묘(癸卯)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2등 4위로 합격하였고, 47세 때인 1616년(광해군 8) 병진(丙辰) 병과(丙科) 2위로 급제한 후 도사(都事)‧헌납(獻納)을 역임하였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문하에 출입하며 시명(詩名)이 높았다. 1592년(선조 25) 부친을 따라 형 경우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의하면, 1623년(인조 1) 10월 사헌부(司憲府)의 계(啓)에 “봉상주부(奉常主簿) 양형우가 본래 천얼(賤孽)로 역괴(逆魁)에 첨부(諂附)하고 같은 노예(奴隷)에게 과제(科第)를 얻었으니 사판(仕版)에서 삭거(削去)하소서”라는 일이 있었다. 1799년(정조 23)에 부친 양대박의 『청계집(淸溪集)』, 형 양경우의 『제호집(霽湖集)』과 함께 『양대사마실기(梁大司馬實記)』로 합편하여 간행되었다.
증조부는 양자윤(梁自潤)이고, 조부는 집의(執義) 양의(梁艤)이며, 부친은 증보국숭록대부(贈輔國崇祿大夫) 판중추부사 겸 병조판서(判中樞府事兼兵曹判書)‧의병대장(義兵大將) 청계도인(淸溪道人) 양대박(梁大樸)이다. 형은 점역재(點易齋) 양경우(梁慶遇)이고, 동생은 양신우(梁信遇)‧양희우(梁熙遇)다. 외조부는 부사직(副司直) 신지(申漬)이다. 34세인 1603년(선조 36) 계묘(癸卯)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2등 4위로 합격하였고, 47세 때인 1616년(광해군 8) 병진(丙辰) 병과(丙科) 2위로 급제한 후 도사(都事)‧헌납(獻納)을 역임하였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문하에 출입하며 시명(詩名)이 높았다. 1592년(선조 25) 부친을 따라 형 경우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의하면, 1623년(인조 1) 10월 사헌부(司憲府)의 계(啓)에 “봉상주부(奉常主簿) 양형우가 본래 천얼(賤孽)로 역괴(逆魁)에 첨부(諂附)하고 같은 노예(奴隷)에게 과제(科第)를 얻었으니 사판(仕版)에서 삭거(削去)하소서”라는 일이 있었다. 1799년(정조 23)에 부친 양대박의 『청계집(淸溪集)』, 형 양경우의 『제호집(霽湖集)』과 함께 『양대사마실기(梁大司馬實記)』로 합편하여 간행되었다.
[참고문헌]
朝鮮人名辭書
海東人物志
國朝文科榜目
承政院日記
海東人物志
國朝文科榜目
承政院日記
[집필자]
김동섭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