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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계선(成啓善)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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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측생(則生)
생년1566(명종 21)
졸년1608(선조 41)
시대조선중기
본관창녕(昌寧)
활동분야문신 > 문신
성수익(成壽益)

[상세내용]

성계선(成啓善)
1566년(명종 21)∼1608년(선조 4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측생(則生). 예조참판 성수익(成壽益)의 아들이다.

1594년(선조 27) 형 성진선(成晉善)과 함께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로 급제, 형제등제(兄弟登第)로 이름을 떨쳤다. 괴원분관(槐院分館: 文科에 及第한 사람 가운데 實務를 익히기 위하여 承文院에 分屬시킴.)에 있다가 내외직을 역임하고, 1601년 병조좌랑에 승임되었으며, 이어 호조‧예조‧형조의 좌랑(佐郞)을 역임하고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을 지낸 뒤 1604년 서천군수(舒川郡守)가 되어, 청렴하고 엄정한 정치를 행하는 목민관(牧民官)으로 표창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이듬해 부사직(副司直)으로 재임중 아들의 과거급제를 위하여 글씨에 능한 사람을 과장(科場)에 들여보내 대리시험을 기도하였다가 탄로되어 파직되었다.

1606년 순천부사로 임명되었으나 신병으로 정사를 향리에게 위임하여 민원(民怨)이 발생하자 1607년 7월 사헌부의 탄핵으로 다시 파직되고 이듬해 43세에 죽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집필자]

이문기(李文基)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