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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남(白振南)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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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선명(善鳴)
호(號)송호(松湖)
생년1564(명종 19)
졸년1618(광해군 10)
시대조선중기
본관해미(海美)
활동분야예술‧체육 > 서예가
백광훈(白光勳)

[상세내용]

백진남(白振南)
1564년(명종 19)∼1618년(광해군 10). 서예가‧시인. 자는 선명(善鳴), 호는 송호(松湖). 본관은 해미(海美).

옥봉(玉峰) 백광훈(白光勳)의 아들이다.

1590년(선조 23)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5세에 사학(四學)의 과시(課試)에서 시‧부(詩賦)로 뛰어나 이이(李珥)의 사랑을 받았고, 정유재란 때에는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의 진중에 피란하였는데, 그 당시 명나라 장수 계금피(季金皮)승덕(承德) 등은 그의 시초(詩草)를 보고 크게 칭찬하였다.

1606년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이 왔을 때 관반(館伴) 유근(柳根)의 천거로 백의종사(白衣從事)하였다. 문장과 필법으로 유명한 지번백진남의 묵적(墨蹟)을 절찬하며 소중히 간직하였으며, 지번도 ‘옥봉서실(玉峰書室)’‧‘옥동연하(玉洞煙霞)’ 8자와 무이구곡시(武夷九曲詩)를 써주었다.

백진남은 평소에 김상헌(金尙憲)조희일(趙希逸)과 서로 좋아하여, 서울집을 그 이웃인 백악(白嶽) 아래에 두었다. 별서(別墅)를 송호(松湖)에 꾸미고 55세에 죽었다.

저서로는 『송호유고』 1권이 있다.

[참고문헌]

國朝人物考
槿域書畵徵

[집필자]

김응현(金膺顯)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