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질간(金質幹)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9C8AC04B1564X0 |
자(字) | 문오(文吾) |
호(號) | 쌍매(雙梅) |
생년 | 1564(명종 19) |
졸년 | 1621(광해군 13)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광산(光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응귀(金應龜)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질간(金質幹)
1564년(명종 19)∼1621년(광해군 1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문오(文吾), 호는 쌍매(雙梅).
부친은 성균박사 김응귀(金應龜)이다.
1588년(선조 21) 생원시에 합격하고, 160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전적(典籍)에 임명되었다.
그뒤 병조좌랑 등 내외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1608년(광해군 즉위)에 지평, 1612년 병조정랑에 승진하였다. 같은해부터 장령‧사간‧집의‧교리‧부교리 등 삼사의 관직을 번갈아 지내면서 대북정권이 추진한 정책의 관철에 앞장섰다.
1613년 겸보덕, 1616년 보덕이 되었으며 직강으로 『선조실록』 편찬의 기주관을 겸임하기도 하였다. 선조의 옥책(玉冊)을 올릴 때 참여한 공로로 당상관에 승진하여, 1618년 여러차례 승지에 오르고 판결사를 지내다가, 1621년 대사간‧이조참판이 되었으나 곧 죽었다.
부친은 성균박사 김응귀(金應龜)이다.
1588년(선조 21) 생원시에 합격하고, 160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전적(典籍)에 임명되었다.
그뒤 병조좌랑 등 내외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1608년(광해군 즉위)에 지평, 1612년 병조정랑에 승진하였다. 같은해부터 장령‧사간‧집의‧교리‧부교리 등 삼사의 관직을 번갈아 지내면서 대북정권이 추진한 정책의 관철에 앞장섰다.
1613년 겸보덕, 1616년 보덕이 되었으며 직강으로 『선조실록』 편찬의 기주관을 겸임하기도 하였다. 선조의 옥책(玉冊)을 올릴 때 참여한 공로로 당상관에 승진하여, 1618년 여러차례 승지에 오르고 판결사를 지내다가, 1621년 대사간‧이조참판이 되었으나 곧 죽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大東野乘
光海君日記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大東野乘
[집필자]
장동익(張東翼)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