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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식(崔東式)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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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정칙(正則)
호(號)율정(栗亭)
생년1562(명종 17)
졸년1614(광해군 6)
시대조선중기
본관삭녕(朔寧)
활동분야문신 > 문신
최변(崔忭)

[상세내용]

최동식(崔東式)
1562년(명종 17)∼1614년(광해군 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정칙(正則), 호는 율정(栗亭).

최변(崔忭)의 아들이며, 최동립(崔東立)의 동생이다. 대사성 우성전(禹聖傳)의 문인이다.

1588년(선조 21) 진사가 되고, 159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학유헌납을 거쳐 장령이 되었으나 대신의 미움을 받아 경성부판관으로 좌천되었고, 부임한 날로부터 주색을 즐겨 곧 파직당하였다.

이듬해 직강사예를 거쳐 안변부사가 되어 제방을 쌓고 도랑을 파는 등 관개사업을 크게 일으켰다. 광해군초에 문학장령사간필선집의 등을 거쳐 1612년(광해군 4) 보덕이 되고, 이듬해 사간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취임하지 않았다.

광해군이 궁궐을 새로 짓고 천도하려 하자 한(漢)나라의 고사를 인용하여 그 부당함을 극간하였고, 정조(鄭造)윤인(尹訒) 등이 폐모론을 발의하자 처음으로 반대의견을 제시하고는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뒤 다시 벼슬하지 않았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이태진(李泰鎭)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