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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朴惺)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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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덕응(德凝)
호(號)대암(大菴)
생년1549(명종 4)
졸년1606(선조 39)
시대조선중기
본관밀양(密陽)
활동분야학자 > 유생
박사눌(朴思訥)
저서『대암집』

[상세내용]

박성(朴惺)
1549년(명종 4)∼1606년(선조 39). 조선 중기의 학자‧의사(義士).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응(德凝), 호는 대암(大菴). 생원 박사눌(朴思訥)의 아들이다. 배신(裵紳)에게 수학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초토사(招討使) 김성일(金誠一)의 참모로 종사하였고, 정유재란 때 조목(趙穆)과 상의하여 의병을 일으켜서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의 막하에 들어갔다.

그뒤 주왕산성(周王山城)의 대장으로 활약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세자사부(世子師傅)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뒤에 사포서사포(司圃署司圃)가 되었다가 공조좌랑을 지내고, 안음현감(安陰縣監)이 되었다.

전쟁 때는 명나라 군사를 접응하고 장정(壯丁)을 동원하여 군인에 충당하며 보급물자를 수송하고 병기를 수리하는 등 활동한 공적이 많았다.

뒤에 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권력을 잡자 벼슬을 사퇴하고, 청송(靑松)의 주왕산 아래 은거하였다.

조정에서 그의 공적을 가상하게 여겨 공조정랑익위사위수(翊衛司衛率)임천(林川)영천(永川)익산(益山) 등의 군수통례원상례(通禮院相禮)청송부사 등에 임명하였으나 모두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그는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심정기(誠心正己)의 학문이 아니면 읽지 않았다. 과거에 뜻을 버리고 공맹(孔孟)의 글을 읽었는데, 만년에 더욱 『논어』를 좋아하여 거처하는 집에 학안재(學顔齋)의 현판을 걸어놓고 동료(東寮)를 사물(四勿), 서료(西寮)를 박약(博約)이라 부르고 그 안에서 글을 읽었다.

글을 배우러 오는 이에게는 먼저 『소학』을 가르쳐서 사람이 되는 길을 깨닫게 하였다.

처음 정인홍(鄭仁弘)과 교유하여 사이가 좋았으나 정인홍대사헌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일을 처결하는 것을 보고 못마땅해 하였는데, 『남명집(南冥集)』의 발문에서 이황(李滉)을 배척한 어구를 보고 “세상에 선정(先正)을 욕하는 군자를 본 일이 없다.”라 하고 절교하였다.

또한, 김성일의 참모가 되었을 때 적세가 사나워져서 도저히 지킬 수 없음을 보고 이곳을 지키지 못하면 경상우도(慶尙右道)를 보전할 수 없는데 어떻게 처리하려는가 하니, 김성일은 “봉강(封疆)의 책임을 맡은 신하는 봉강에서 죽을 뿐이다. 그대는 이곳을 버리고 도망가라.”라고 하였으나 끝내 떠나지 않았고, 김성일이 역질 걸렸을 때 다른 막료들은 모두 피하였으나 그는 끝내 옆에서 간호하는 등 의리를 지켰다.

그의 교우는 최영경(崔永慶)김우옹(金宇顒)장현광(張顯光)권호문(權好文) 등으로 서로 내왕하며 학문을 연마하였다.

저서로는 『대암집』이 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國朝人物考

[집필자]

권오호(權五虎)
대표명박성(朴惺)
성(惺)
성명박성(朴惺)
대암(大菴)

성명 : "박성(朴惺)"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國朝編年v13兵六千餘人又傳檄諸道文辭激切國人傳誦焉○陜川人鄭仁弘起兵討賊仁弘素爲鄕郡士民所畏服與前佐郞金沔前縣監朴惺儒生郭䞭前縣監郭趐等紏集鄕兵又得前僉使孫仁甲爲中軍仁甲武勇絶倫異軍別陣而稟令於仁弘仁甲先擊屯賊敗之燒
國朝編年v15爲所襲遂不行時羅又至謂應瑞曰淸正今已下陸朝鮮何不要截洋中佯爲恨惜之意事聞于朝皆咎舜臣臺諫請拿鞫前縣監朴惺玄風人亦上疏極言舜臣可斬遂拿來上猶疑所聞不盡實特遣成均司成南以信往閑山廉察以信反奏曰淸正留海上七日我
國朝編年v16子曰吾得罪君父惶恐而死汝當衣以布衣歛以布衾取等覆棺牛車敀葬略爲掩土無遺我志云其情慽矣顧其被誣之端發於朴惺文景虎之疏此則遐遠人傳聞之誤而其所以構成罪案者則實鄭仁弘柳永慶之所主張也其時三司之官呈告或立異至於三
紀年便攷v17朴惺
紀年便攷v17朴惺密陽一高靈人生貟思訥子明宗丁未生字德凝號大菴受業於裵紳慨然志學發憤力行非孔孟思曾之書不讀宣祖丁酉龍倡
震史記略v3陽等地長子孫務耕種號降倭村○承旨韓俊謙建白依中朝法立撥馬馳報邊情步撥三十里一站騎撥二十里一站○前縣監朴惺上疏斥李珥成渾至謂奸黨之魁惺乃鄭仁弘門徒也○陳寅周陞得罪於經理讒之於兵部主事丁應泰曰島山之役天兵死者
震乘總v6首而集被甲騰換有如易席賊不能害南南原旣陷全州以北皆瓦解原旣陷全州以北瓦解矣元以此被誅傳首東來○前縣監朴惺上疏斥朴惺疏斥牛栗李珥成渾至謂奸黨之魁惺乃仁弘門徒也○李舜臣破倭兵李忠武破倭于碧波津于珍島碧波亭下舜
震乘總v6朴惺疏斥牛栗
野乘v1於追論其時䑓諌之啓仁弘爾瞻宖潚奉先喜男䓁又與成就角立互相擠排遂為南北黨可謂反覄小人也儒士則文弘道朴惺文景虎李德亨䓁皆以仁弘門客為其指使而各上䟽論斥不遺餘力
龍問門答v1勝惜哉余於其子孫某相視而疏本尙在其家云早晩吾當得見見之則亦亦君未久南不幸全不得見尙今爲□□仁弘嗾其黨朴惺文景虎等上疏言牛溪松江誣殺崔永慶奇自獻鼓煽其論以松江爲奸凶以牛溪爲奸黨金東崗宇顒亦自救之東
文獻攷略v4松潭祠宇肅宗癸酉建朴惺號大菴府使
辰巳干戈日記爾多士苟相奮 礪則未必不爲恢復之根抵耳聞鄭▣▣金沔朴惺郭★ 趙宗道李魯盧欽郭再祐權瀁李大期全雨等倡合 義
國朝人物志v2納拜曺植叩竭無餘後從寒岡游又與洛川裴紳梧溪金富倫東岡金宇顒相友善大菴朴惺存齋郭䞭許以心契館薦初授別提以便養爲金泉察訪丙戌春朝廷以學行卓異超遷司圃又除鴻山縣監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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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