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겸(郭再謙)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ACFDC7ACACB8B1547X0 |
| 자(字) | 익보(益輔) |
| 호(號) | 괴헌(槐軒) |
| 생년 | 1547(명종 2) |
| 졸년 | 1615(광해군 7)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현풍(玄風) |
| 활동분야 | 호국 > 의병 |

| 부 | 곽초(郭超) |

[상세내용]
곽재겸(郭再謙)
1547년(명종 2)∼1615년(광해군 7).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익보(益輔), 호는 괴헌(槐軒).
부친은 선무랑(宣務郞) 곽초(郭超)이다. 작은아버지 곽월(郭越)에게 글을 배우다가 전경창(全慶昌)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한 뒤 정구(鄭逑)와도 교류하였다.
장현광(張顯光)‧서사원(徐思遠) 등과 친교가 두터웠으며, 1573년(선조 6) 김우옹(金宇顒)의 추천으로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을 도와 모병(募兵)‧모량(募糧) 등 토적활동(討敵活動)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한편, 서사원과 협력하여 직접 의병활동을 펴기도 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는 종제(從弟)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의병을 이끌고 창녕(昌寧)의 화왕산성전투(火旺山城戰鬪)에 참전, 왜적을 물리친 뒤 그 공으로 부호군(副護軍)에 올랐다.
난이 끝난 후 향리에서 인재교육으로 여생을 마친 뒤 대구의 유호서원(柳湖書院)에 배향되었다.
부친은 선무랑(宣務郞) 곽초(郭超)이다. 작은아버지 곽월(郭越)에게 글을 배우다가 전경창(全慶昌)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한 뒤 정구(鄭逑)와도 교류하였다.
장현광(張顯光)‧서사원(徐思遠) 등과 친교가 두터웠으며, 1573년(선조 6) 김우옹(金宇顒)의 추천으로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을 도와 모병(募兵)‧모량(募糧) 등 토적활동(討敵活動)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한편, 서사원과 협력하여 직접 의병활동을 펴기도 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는 종제(從弟)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의병을 이끌고 창녕(昌寧)의 화왕산성전투(火旺山城戰鬪)에 참전, 왜적을 물리친 뒤 그 공으로 부호군(副護軍)에 올랐다.
난이 끝난 후 향리에서 인재교육으로 여생을 마친 뒤 대구의 유호서원(柳湖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笣山郭氏世譜
大邱邑誌
大邱邑誌
[집필자]
조원래(趙湲來)
| 대표명 | 곽재겸(郭再謙) |
| 성명 | 곽재겸(郭再謙) |
성명 : "곽재겸(郭再謙)"에 대한 용례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 2010-01-05 | 곽재겸의 문집 [괴헌유집]을 참고하여 "김경창의 문하에"를 "전경창의 문하에" 로 고침.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