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흔(許昕)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D5C8D754FFFFB1543X0 |
자(字) | 경회(景晦) |
생년 | 1543(중종 38) |
졸년 | 1622(광해군 14)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양천(陽川)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허운(許雲) |
외조부 | 이귀정(李龜楨) |
[관련정보]
[상세내용]
허흔(許昕)
1543년(중종 38)∼1622년(광해군 1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경회(景晦).
부친은 결성현감 허운(許雲)이며, 모친은 감찰 이구정(李龜楨)의 딸이다.
1579년(선조 12) 생원이 되고, 158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감찰‧형조좌랑‧성균관직강‧춘추관편수관을 역임하였다. 이어 경상‧평안도도사가 되었을 때 의령현감으로 있던 정인홍(鄭仁弘)이 영송(迎送)에 무례하므로 그가 그 주관한 아전을 벌주니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뒤 기축옥사 때 정여립(鄭汝立)과 관련이 있다 하여 감옥에 갇혔다가 혐의가 없어 풀려났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평안도도사로 임금을 모시고 의주로 갔는데 왕을 호종한 공으로 절도사가 되었다. 성을 나누어 지켰는데 그는 왕실의 신주(神主)를 관리하였으며, 얼마 뒤 정주목사가 되었다.
1615년 죽주부사(竹州府使)로 임명되었다가 나이가 70이라 하여 체차되었고, 광해군의 폐모론이 일어나자 벼슬을 멀리하였다. 임진왜란의 공으로 공신에 녹훈되었다가 인조반정 후 삭훈되었다.
부친은 결성현감 허운(許雲)이며, 모친은 감찰 이구정(李龜楨)의 딸이다.
1579년(선조 12) 생원이 되고, 158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감찰‧형조좌랑‧성균관직강‧춘추관편수관을 역임하였다. 이어 경상‧평안도도사가 되었을 때 의령현감으로 있던 정인홍(鄭仁弘)이 영송(迎送)에 무례하므로 그가 그 주관한 아전을 벌주니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뒤 기축옥사 때 정여립(鄭汝立)과 관련이 있다 하여 감옥에 갇혔다가 혐의가 없어 풀려났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평안도도사로 임금을 모시고 의주로 갔는데 왕을 호종한 공으로 절도사가 되었다. 성을 나누어 지켰는데 그는 왕실의 신주(神主)를 관리하였으며, 얼마 뒤 정주목사가 되었다.
1615년 죽주부사(竹州府使)로 임명되었다가 나이가 70이라 하여 체차되었고, 광해군의 폐모론이 일어나자 벼슬을 멀리하였다. 임진왜란의 공으로 공신에 녹훈되었다가 인조반정 후 삭훈되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光海君日記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이동길(李東吉)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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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