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효근(奇孝謹)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AE30D6A8ADFCB1542X0 |
| 자(字) | 숙흠(叔欽) |
| 생년 | 1542(중종 37) |
| 졸년 | 1597(선조 30)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행주(幸州) |
| 활동분야 | 무신 > 무신 |

| 부 | 기대유(奇大有) |
| 공신호 | 선무공신(宣武功臣) |

[상세내용]
기효근(奇孝謹)
1542년(중종 37)∼1597년(선조 30).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숙흠(叔欽). 사과(司果) 기대유(奇大有)의 아들이다.
어려서 예문(藝文)을 배우고 서법에 능했으나 성격이 호방하여 무과를 택하였다.
1579년(선조 12) 급제하고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당시 오랫동안 평화가 계속되자 군비가 소홀하였으므로 왕의 명을 받들어 주와 군의 군비를 두루 점검하였다.
1590년 해남현령으로 부임하여 전선〔戰艦〕과 병기를 수리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수군절도사 원균(元均)의 휘하에서 여러 차례 해전에 참가하였다. 그때마다 선봉이 되어 큰 공을 세웠으므로 통정대부가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병으로 현령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적병을 만나 어머니와 함께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하였다.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추록되고 개백군(皆伯君)에 추봉되고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어려서 예문(藝文)을 배우고 서법에 능했으나 성격이 호방하여 무과를 택하였다.
1579년(선조 12) 급제하고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당시 오랫동안 평화가 계속되자 군비가 소홀하였으므로 왕의 명을 받들어 주와 군의 군비를 두루 점검하였다.
1590년 해남현령으로 부임하여 전선〔戰艦〕과 병기를 수리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수군절도사 원균(元均)의 휘하에서 여러 차례 해전에 참가하였다. 그때마다 선봉이 되어 큰 공을 세웠으므로 통정대부가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병으로 현령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적병을 만나 어머니와 함께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하였다.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추록되고 개백군(皆伯君)에 추봉되고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西歸遺稿
西歸遺稿
[집필자]
이정일(李貞一)
| 대표명 | 기효근(奇孝謹) |
| 성명 | 기효근(奇孝謹) |
성명 : "기효근(奇孝謹)"에 대한 용례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