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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朴泓)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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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청원(淸源)
생년1534(중종 29)
졸년1593(선조 26)
시대조선전기
본관울산(蔚山)
활동분야무신 > 무신
박영무(朴英珷)
외조부정인걸(鄭仁傑)
출생지충청도 대흥현(大興縣)

[상세내용]

박홍(朴泓)
1534년(중종 29)∼1593년(선조 26).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청원(淸源).

별제(別提) 박영무(朴英珷)의 아들이며, 모친은 직장(直長) 정인걸(鄭仁傑)의 딸이다. 충청도 대흥현(大興縣) 출생.

1556년(명종 11) 23세로 무과에 합격하여 선전관에 임명된 이후 강계부판관(江界府判官)정평부사(定平府使)종성부사(鍾城府使) 등 외직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좌도수군절도사로서 왜적의 선봉을 맞아 싸우게 되었으나, 중과부적으로 본진을 소각하고 죽령(竹嶺)으로 후퇴하여 적을 방어하려고 하였으나, 조령(鳥嶺)이 함락되었다는 말을 듣고 서울로 후퇴하였다.

그러나 이미 선조한성을 떠난 지 며칠이 지난 뒤라 행재소(行在所)를 찾아가던 중,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을 만나 좌위대장(左衛大將)의 직에 임명되어 임진강 방어에 참여하였고, 신길(申硈)유극량(劉克良) 등과 함께 병사를 나누어 파주에서 싸웠으나 모두 패하여 평양으로 탈출하였다.

평양에 도착한 뒤 사헌부를 위시한 조신들로부터 영토를 지켜야 할 신하로서 책임을 회피하고 군율을 위반했다는 죄목으로 탄핵을 받게 되었으나, 때가 전시이고 또 후퇴하던 과정에서 종군한 것이 감안되어 처벌을 면하였다.

같은해 6월 평양이 함락되자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과 함께 평산으로 들어가 병사를 모으고 있던 중 당시 이천(伊川)에 있던 세자의 명을 받고, 세자를 호위 시종하면서 성천으로 들어가 우위대장의용도대장(義勇都大將)에 임명되었다.

그뒤 평양방면으로 나아가 수차 왜적과 접전하였으나 크게 공을 세우지는 못하였다.

1593년 1월 평양이 수복되자, 김명원을 따라서 파주까지 종군하였으나 재발한 지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귀향하던 도중에 죽었다.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宣祖修正實錄
國朝人物考

[집필자]

김진봉(金鎭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