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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욱(金彦勗)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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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여강(汝强)
호(號)서석(瑞石)
호(號)서석산인(瑞石山人)
생년1545(인종 1)
졸년1596(선조 29)
시대조선전기
활동분야학자 > 유생

[상세내용]

김언욱(金彦勗)
1545년(인종 1)∼1596년(선조 29). 조선 전기 유학자. 자는 여강(汝江), 호는 서석(瑞石)이며 서석산인(瑞石山人)으로도 불렸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열 살의 나이에 글을 지었다.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으로부터 글을 배웠다. 집안이 무척 가난하였으나, 학문에만 뜻을 두어 정진하고, 벼슬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부친이 죽자 성현의 가르침을 따라 묘 옆에 움막을 짓고 죽으로 끼니를 때우며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조정에서 이 사실을 알고 찰방(察訪)을 제수(除授)하였으나 “거짓으로 고을을 다스림은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근원이 된다.”하며 사양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임금이 파천(播遷)하자, 초야에서 달려 나가 어가(御駕)를 모셨다. 선조가 그 충절을 가상히 여기어 정6품 장례원사평(掌隷院司評)을 제수(除授)하였으나 거절하였다. 난이 끝나자 고향인 임향(林養) 덕구원(德丘園)에 돌아와 학문에 몰두하였으며, 만덕(晩德) 김대기(金大器)와 교유하며 지냈다.

조정에서 좌찬성(左贊成)에 추증(追贈)하고, 구산사우(龜山祠宇)오산창의사(鰲山倡義祠)에 배향하였다.

[참고문헌]

輿地圖書補遺篇-全羅道 潭陽
담양삼강록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

[집필자]

전종헌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