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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안(趙瑞安)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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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諡號)평숙(平肅)
생년?(미상)
졸년1457(세조 3)
시대조선전기
본관배천(白川)
활동분야문신 > 문신
조반(趙胖)
조부조세경(趙世卿)
처부최원준(崔源濬)
처부김장(金張)
외조부이양오(李養吾)

[상세내용]

조서안(趙瑞安)
미상∼1457년(세조 3). 본관은 배천(白川).

조부는 조세경(趙世卿)이고, 부친은 복흥군(復興君) 조반(趙胖)이다. 외조부는 이양오(李養吾)이고, 장인은 최원준(崔源濬)김장(金張)이다. 형은 조서로(趙瑞老)조서강(趙瑞康)이다. 1419년(세종 1) 기해(己亥)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같은 해 식년시(式年試) 동진사(同進士) 3위로 급제하였다. 지통례문사(知通禮門事), 좌우헌납(左右獻納), 병조정랑, 의정부사인(舍人), 사헌집의(司憲執義), 승정원승지, 예조참판(禮曹參判),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 중추원사(中樞院使)를 역임하였고, 영흥대도호부사(永興大都護府使), 진주목사(晉州牧使),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 함길도도관찰사(咸吉道都觀察使) 등의 외관직을 거치기도 하였다. 졸할 때 관직은 자헌대부(資憲大夫)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였다. 시호는 평숙(平肅)이다.

1427년(세종 9) 좌헌납으로서 양녕대군 이제(李禔)의 아들 순성군(順成君) 이개(李𧪚)에게 작위(爵位)를 주어 서울에 살도록 한 처분이 부당함을 여러 차례 상소하였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던 중, 부사정 성규(成揆)사정이라고 관직을 속여 관직을 받았는데, 그의 전직(前職)을 상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면당하기도 하였다.

세종 조에 사대부 집의 규모를 30간(間)을 넘지 않도록 하였는데, 당시 병조좌랑(兵曹左郞)이던 조서안은 집을 크게 지으려고 자재를 마련해 놓은 상태였으나 ‘법이 정해진 초기부터 제도보다 지나치게 집을 꾸미면 남들이 나를 보고 무어라고 하겠느냐?’라고 하면서 낮고 좁은 30간짜리로 지었다고 한다. 검약하고 법을 지키려던 그의 일화는 성종 조에 좌승지 유지(柳輊)가 관리들의 사치풍속을 경계하면서 거론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新增東國輿地勝覽

[집필자]

고윤희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