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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尹珣)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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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백옥(伯玉)
호(號)임심(臨深)
생년?(미상)
졸년1522(중종 17)
시대조선전기
본관파평(坡平)
활동분야문신 > 문신
윤계겸(尹繼謙)
조부윤사흔(尹士昕)
증조부윤번(尹璠)
구씨(具氏)

[상세내용]

윤순(尹珣)
미상∼1522년(중종 17).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백옥(伯玉), 호는 임심(臨深).

부는 윤계겸(尹繼謙), 조부는 윤사흔(尹士昕), 증조부는 윤번(尹璠)이다.

1501년(연산 7)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정언에 제수되고, 1504년(연산군 10)에 동부승지를 지냈다. 1507년(중종 2)에 경상도관찰사를 지내고, 1517년(중종 12) 6월에 판윤(判尹)에 재직하면서 부인의 소행때문에 사직을 청했다. 그의 부인 구씨(具氏)영의정 구치관(具致寬)의 증손녀였는데, 연산군(燕山君) 때 궁에 출입하여 추잡한 소문이 퍼졌다. 게다가 아우 윤림(尹琳)이 생원(生員)으로서 지금 5품직이 되었는데, 위인이 음험하기 이를 데 없다고 알려졌다. 윤림의 아들 윤극인(尹克仁)윤안인(尹安仁)도 다 등제(登第)하였는데, 마찬가지로 음험하며 선류(善類)를 싫어하는 자들로 소문이 났다. 윤림은 등제를 못하였고, 윤극인은 일찍 죽었기 때문에 혹여 윤안인이 뜻을 얻지 않을까 근심하여, 조정은 물론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士林)에서 수차례 논핵(論劾)하였다. 그 결과 부인은 그 해 7월에 왕비(王妃)를 책봉(冊封)한 다음에는 대간(臺諫)의 논박에 따라 도성(都城) 밖으로 내쫓겼다. 윤순(尹珣)이 부끄러움과 한탄으로 상심(傷心)하여 날마다 주색(酒色)을 일삼자, 구씨는 식음을 전폐하다 죽었다. 1521년(중종 16)에 지중추부사에 제수되고, 1522년(중종 17)에 병들어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朝鮮王朝實錄

[집필자]

이채경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