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림(田霖)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804B9BCFFFFD1509X0 |
시호(諡號) | 위절(威節) |
생년 | ?(미상) |
졸년 | 1509(중종 4)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남양(南陽) |
활동분야 | 무신 > 무신 |
[상세내용]
전림(田霖)
미상∼1509년(중종 4).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무과에 급제하여 1482년(성종 13) 전주판관이 되고, 그뒤 계속하여 훈련원판관‧첨지중추부사‧전라우도수군절도사 등을 지냈다.
1492년 회령부사, 1500년(연산군 6) 해랑도초무사(海浪島招撫使), 1504년 좌상대장(左廂大將)을 거쳐 한성부판윤을 역임하고, 그 이듬해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07년(중종 2) 한성부판윤‧권중추부사가 되었다. 한성부판윤 재직시에 회산군(檜山君) 염(恬)의 집이 지나치게 가사규제(家舍規制)에 벗어남을 바로잡기도 하였다.
청백리로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엄격한 성격으로 아들이 행패를 부린 데 대하여 격분하여 살해하고도 태연자약하였다 한다. 그가 병이 들었을 때 찾아온 친구 김전(金詮)과 큰 그릇으로 술을 나누어 마시고 난 뒤 김전이 집 밖을 나서기 전에 죽었다고 한다.
시호는 위절(威節)이다.
1492년 회령부사, 1500년(연산군 6) 해랑도초무사(海浪島招撫使), 1504년 좌상대장(左廂大將)을 거쳐 한성부판윤을 역임하고, 그 이듬해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07년(중종 2) 한성부판윤‧권중추부사가 되었다. 한성부판윤 재직시에 회산군(檜山君) 염(恬)의 집이 지나치게 가사규제(家舍規制)에 벗어남을 바로잡기도 하였다.
청백리로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엄격한 성격으로 아들이 행패를 부린 데 대하여 격분하여 살해하고도 태연자약하였다 한다. 그가 병이 들었을 때 찾아온 친구 김전(金詮)과 큰 그릇으로 술을 나누어 마시고 난 뒤 김전이 집 밖을 나서기 전에 죽었다고 한다.
시호는 위절(威節)이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新增東國輿地勝覽
增補文獻備考
沖齋集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新增東國輿地勝覽
增補文獻備考
沖齋集
[집필자]
정오룡(鄭旿龍)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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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