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효인(任孝仁)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784D6A8C778U9999X0 |
| 생년 | ?(미상)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전기 |
| 본관 | 풍천(豊川) |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 부 | 임중선(任仲善) |
| 조부 | 임산보(任山寶) |
| 외조부 | 한수(韓修) |

[상세내용]
임효인(任孝仁)
생졸년 미상.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임산보(任山寶)의 손자로, 임중선(任仲善)의 아들이며, 모친은 한수(韓修)의 딸이다.
전직(殿直)으로서 1427년(세종 9) 친시문과(親試文科)에 을과로 급제, 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 등을 거쳐 1444년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1451년(문종 1) 우사간 재임 때 승문원이 중국과의 외교문서를 전장(專掌)하니만큼 그곳 관리를 가볍게 인사 이동할 수는 없고 도리어 오랫동안 유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454년(단종 2) 판통례원사(判通禮院事)‧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를 역임하고, 이해 관압사(管押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58년(세조 4) 이조참의, 이듬해 중추원부사 겸 강원도도관찰사를 거쳐, 1460년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다음해 충청도도관찰사가 되고, 1462년에는 인순부윤(仁順府尹)을 거쳐 동지중추원사가 되었다.
전직(殿直)으로서 1427년(세종 9) 친시문과(親試文科)에 을과로 급제, 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 등을 거쳐 1444년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1451년(문종 1) 우사간 재임 때 승문원이 중국과의 외교문서를 전장(專掌)하니만큼 그곳 관리를 가볍게 인사 이동할 수는 없고 도리어 오랫동안 유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454년(단종 2) 판통례원사(判通禮院事)‧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를 역임하고, 이해 관압사(管押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58년(세조 4) 이조참의, 이듬해 중추원부사 겸 강원도도관찰사를 거쳐, 1460년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다음해 충청도도관찰사가 되고, 1462년에는 인순부윤(仁順府尹)을 거쳐 동지중추원사가 되었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文宗實錄
端宗實錄
世祖實錄
國朝榜目
文宗實錄
端宗實錄
世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권인혁(權仁赫)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