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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창(朴以昌)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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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1451(문종 1)
시대조선전기
본관상주(尙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박안신(朴安臣)
조부박문로(朴文老)

[상세내용]

박이창(朴以昌)
미상∼1451년(문종 1).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상주(尙州).

판사재시사(判司宰寺事) 박문로(朴文老)의 손자이며, 대제학 박안신(朴安臣)의 아들이다.

1417년(태종 17)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한림원(翰林院)에 보직되었다.

1420년(세종 2) 주서(注書)로서 사관(史官) 안수사(安修巳)와 함께 의금부에서 국문(鞠問)을 받고 장(杖) 100대에 처하여졌다.

1426년 전라도감찰로 파견되어 조희정(趙希鼎)양맹지(梁孟智)이신(李伸)문헌(文獻) 등이 재물을 감춘 것을 탄핵하였다.

1430년 4월 지평(持平)을 역임하고, 1434년 내자소윤(內資少尹)으로서 경기황해도에 파견되어 진휼(賑恤)의 상황을 살폈다.

1443년 우부승지, 1445년 좌부승지를 역임하였다.

1447년 인수부윤(仁壽府尹)공조참판황해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450년 호조참판평안도관찰사를 지내고, 이듬해 문종이 즉위하자 중추원부사에서 형조참판이 되어 평안도를 좌우로 나누어 각기 도절제사를 보내고, 강계삭주(朔州)에는 충성스럽고 용감한 인물을 보내기를 청하였다.

같은해 경창부윤(慶昌府尹)평안도감사가 되었고, 9월에는 성절사(聖節使)명나라에 갈 때 먼 길에 대비, 많은 양곡을 가져간 것이 죄가 되어 돌아오는 길에 의주에서 붙잡히자 국법을 어긴 것을 뉘우치고 자결하였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文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박천식(朴天植)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