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군(桂陽君)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CC4C591AD70D1464X0 |
이명(異名) | 이증(李璔) |
자(字) | 현지(顯之) |
시호(諡號) | 충소(忠昭) |
생년 | ?(미상) |
졸년 | 1464(세조 10)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왕실 > 종친 |
모 | 신빈 김씨(愼嬪金氏) |
처부 | 한확(韓確) |
공신호 | 좌익공신(佐翼功臣) |
[상세내용]
계양군(桂陽君)
미상∼1464년(세조 10). 조선 초기의 종실.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증(李璔), 자는 현지(顯之).
부친은 세종, 모친은 신빈 김씨(愼嬪金氏)이며, 부인은 좌의정 한확(韓確)의 딸이다.
1434년(세종 16) 계양군에 봉하여졌다. 아버지의 총애가 지극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하고 글씨도 잘 썼다.
1452년 단종이 즉위한 뒤 한명회(韓明澮)‧한확 등과 함께 수양대군의 측근이 되어, 계유정난을 도왔고,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좌익공신(佐翼功臣) 1등에 책정되었다. 세조의 측근에서 서무의 출납을 맡아 신임을 얻었다.
남을 대접함이 겸손하여 권세를 부리지 않았으나, 주색에 빠져 일찍 죽었다. 시호는 충소(忠昭)이다.
부친은 세종, 모친은 신빈 김씨(愼嬪金氏)이며, 부인은 좌의정 한확(韓確)의 딸이다.
1434년(세종 16) 계양군에 봉하여졌다. 아버지의 총애가 지극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하고 글씨도 잘 썼다.
1452년 단종이 즉위한 뒤 한명회(韓明澮)‧한확 등과 함께 수양대군의 측근이 되어, 계유정난을 도왔고,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좌익공신(佐翼功臣) 1등에 책정되었다. 세조의 측근에서 서무의 출납을 맡아 신임을 얻었다.
남을 대접함이 겸손하여 권세를 부리지 않았으나, 주색에 빠져 일찍 죽었다. 시호는 충소(忠昭)이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端宗實錄
世祖實錄
端宗實錄
世祖實錄
[집필자]
이재호(李載浩)
대표명 | 계양군(桂陽君) |
명 | 증(璔) |
봉호 | 계양군(桂陽君), 계양군증(桂陽君增), 계양군증(桂陽君璔), 계탕군(桂湯君) |
시호 | 충소(忠昭) |
자 | 현지(顯之) |
명 : "증(璔)"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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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