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운해(魚雲海)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5B4C6B4D574B1536X0 |
자(字) | 경유(景遊) |
호(號) | 하담(荷潭) |
생년 | 1536(중종 31) |
졸년 | 1585(선조 18)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함종(咸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어계선(魚季瑄) |
[관련정보]
[상세내용]
어운해(魚雲海)
1536년(중종 31)∼1585년(선조 18).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경유(景遊), 호는 하담(荷潭). 어계선(魚季瑄)의 아들이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합격한 뒤 과거와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연구에 몰두하였다.
1568년(선조 1)에 이탁(李鐸)‧박순(朴淳)‧노수신(盧守愼) 등이 초야의 선비 중 학덕을 겸비한 인재를 등용하자고 건의하여 성운(成運)‧임훈(林薰)‧한수(韓脩)‧남언경(南彦經)‧최영경(崔永慶)‧김천일(金千鎰)‧홍가신(洪可臣)‧유몽학(柳夢鶴)‧송대립(宋大立) 등과 함께 천거되어 관직에 나아갔다.
1570년 조지서별제(造紙署別提)에 임명된 뒤 사예‧직장‧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형조좌랑‧과천현감‧호조좌랑‧경상도도사‧강원도도사‧형조정랑‧평창군수를 역임하였다. 이이(李珥)‧성혼(成渾) 등과의 교의가 깊었고, 검약을 숭상하고 예법을 중히 여겨 부모상에 한결같이 주자(朱子)의 『가례(家禮)』를 따랐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합격한 뒤 과거와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연구에 몰두하였다.
1568년(선조 1)에 이탁(李鐸)‧박순(朴淳)‧노수신(盧守愼) 등이 초야의 선비 중 학덕을 겸비한 인재를 등용하자고 건의하여 성운(成運)‧임훈(林薰)‧한수(韓脩)‧남언경(南彦經)‧최영경(崔永慶)‧김천일(金千鎰)‧홍가신(洪可臣)‧유몽학(柳夢鶴)‧송대립(宋大立) 등과 함께 천거되어 관직에 나아갔다.
1570년 조지서별제(造紙署別提)에 임명된 뒤 사예‧직장‧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형조좌랑‧과천현감‧호조좌랑‧경상도도사‧강원도도사‧형조정랑‧평창군수를 역임하였다. 이이(李珥)‧성혼(成渾) 등과의 교의가 깊었고, 검약을 숭상하고 예법을 중히 여겨 부모상에 한결같이 주자(朱子)의 『가례(家禮)』를 따랐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집필자]
정중환(丁仲煥)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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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