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검(李希儉)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D76CAC80B1516X0 |
자(字) | 경질(景質) |
호(號) | 국재(菊齋) |
생년 | 1516(중종 11) |
졸년 | 1579(선조 12)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영정(李令禎) |
고조부 | 이비(李裶) |
외조부 | 강황(姜璜) |
저서 | 『동고집』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희검(李希儉)
1516년(중종 11)∼1579년(선조 1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질(景質), 호는 동고(東皐) 또는 국재(菊齋).
이비(李裶)의 현손으로, 이영정(李令禎)의 아들이며, 모친은 강황(姜璜)의 딸이고, 이수광(李睟光)의 아버지이다.
1546년(명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학유‧정랑‧교리 등을 거쳐 승지‧오위장을 지내고 사간에 이르렀다.
이때 왕실의 인척임을 기화로 횡포를 부리는 이량(李樑)을 탄핵하였다가 도리어 장단부사로 좌천되었으나 드디어 이량이 쫓겨나게되자 다시 우승지에 제수되었다.
1572년(선조 5) 진하부사(進賀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병조참의‧대사헌을 거쳐 호조‧형조‧병조의 판서를 지내고, 지경연사(知經筵事)를 지냈다.
저서로는 『동고집』이 있다.
이비(李裶)의 현손으로, 이영정(李令禎)의 아들이며, 모친은 강황(姜璜)의 딸이고, 이수광(李睟光)의 아버지이다.
1546년(명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학유‧정랑‧교리 등을 거쳐 승지‧오위장을 지내고 사간에 이르렀다.
이때 왕실의 인척임을 기화로 횡포를 부리는 이량(李樑)을 탄핵하였다가 도리어 장단부사로 좌천되었으나 드디어 이량이 쫓겨나게되자 다시 우승지에 제수되었다.
1572년(선조 5) 진하부사(進賀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병조참의‧대사헌을 거쳐 호조‧형조‧병조의 판서를 지내고, 지경연사(知經筵事)를 지냈다.
저서로는 『동고집』이 있다.
[참고문헌]
明宗實錄
宣祖實錄
國朝榜目
眉巖日記
國朝人物考
淸選考
宣祖實錄
國朝榜目
眉巖日記
國朝人物考
淸選考
[집필자]
이정일(李貞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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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