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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안국(趙安國)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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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국경(國卿)
생년1501(연산군 7)
졸년1573(선조 6)
시대조선전기
본관풍양(豊壤)
활동분야무신 > 무신
조현범(趙賢範)
외조부윤찬(尹贊)

[상세내용]

조안국(趙安國)
1501년(연산군 7)∼1573년(선조 6).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국경(國卿).

부친은 수군절도사 조현범(趙賢範)이며, 모친은 파성군(坡城君) 윤찬(尹贊)의 딸이다.

1524년(중종 19) 무과에 급제, 이듬해 선전관이 되고, 여러 차례 시사대회(試射大會) 또는 격구대회(擊毬大會)에서 우승하는 등 무인으로 명성이 높았다.

1535년 문신으로 발탁되어 동부승지를 지내고, 1548년(명종 3) 광주목사(光州牧使)종성부사 등으로 외보되었다.

1551년 경상좌도병마절도사 재직중 사사(賜死)된 중종 때의 권신 김안로(金安老)에게 아부하였다는 탄핵으로 장단부사로 좌천되었으나, 1553년 관내의 도적을 일소한 공으로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전임되었다.

1555년 을묘왜변이 일어나자 전라병사방어사순변사 남치근(南致勤)과 함께 나주일대에 침구한 왜적들을 소탕하였다. 뒤에 제2차작전에서 적에게 허(虛)를 찔려 작전에 실패하자, 이로 인하여 관직을 박탈당한 채 녹도(鹿島)에 장류되었으나 1557년 장단부사에 다시 서용되고, 1561년 함경남도병마절도사, 1567년(선조 즉위) 경기도수군절도사를 거쳐 포도대장오위장부총관 등을 역임하였다.

그의 절륜한 무예로 28세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고, 종성부사가 되었을 때 그의 아버지 조현범회령부사로 재직하여 육진(六鎭)을 부자가 지킨다는 명성이 한때 높았다.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明宗實錄
宣祖實錄
國朝人物考

[집필자]

윤용혁(尹龍爀)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