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복(愼希復)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2E0D76CBCF5B1493X0 |
자(字) | 양숙(養叔) |
호(號) | 매천(梅川) |
시호(諡號) | 장정(莊靖) |
생년 | 1506(중종 1) |
졸년 | 1565(명종 20)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거창(居昌)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신돈례(愼敦禮) |
[관련정보]
[상세내용]
신희복(愼希復)
1506년(중종 1)∼1565년(명종 2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양숙(養叔), 호는 관천자(觀泉子)‧매천(梅川). 거창현감 신돈례(愼敦禮)의 아들이며,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이다. 중종 때 사마시에 합격하고, 명종이 대군(大君)때 사부(師傅)가 되었다.
1548년(명종 3) 명종이 즉위한 뒤 사부 때의 은공으로 군기시판관(軍器寺判官)이 되고, 1550년에 호조정랑으로 승직되어 내승(內乘)을 겸직하였다.
1553년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당시 한해(旱害)가 극심한 금산군에 군수로 나아가 기민(飢民)을 구제, 민심을 수습하고 돌아온 뒤 대제학이 되었다. 이어 황해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병조참판이 되어 임금으로부터 품대(品帶)를 하사받았다.
경기도관찰사를 맡고 있을 때는 외직으로서 임금이 임어하는 서총대(瑞葱臺) 향연에 참여하는 특혜를 받기도 하였다.
그뒤 개성유수를 거쳐 우참찬이 되었다. 시호는 장정(莊靖)이다.
1548년(명종 3) 명종이 즉위한 뒤 사부 때의 은공으로 군기시판관(軍器寺判官)이 되고, 1550년에 호조정랑으로 승직되어 내승(內乘)을 겸직하였다.
1553년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당시 한해(旱害)가 극심한 금산군에 군수로 나아가 기민(飢民)을 구제, 민심을 수습하고 돌아온 뒤 대제학이 되었다. 이어 황해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병조참판이 되어 임금으로부터 품대(品帶)를 하사받았다.
경기도관찰사를 맡고 있을 때는 외직으로서 임금이 임어하는 서총대(瑞葱臺) 향연에 참여하는 특혜를 받기도 하였다.
그뒤 개성유수를 거쳐 우참찬이 되었다. 시호는 장정(莊靖)이다.
[참고문헌]
明宗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집필자]
이재범(李在範)
명 : "희복(希復)"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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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1-09-30 | 조선왕조실록 졸기를 참고하여 생년을 계축(1493)에서 병인(1506)으로 수정함. |